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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physics)

2014.08.18 09:50

나공 조회 수:1594

1.

두 영역의 기본 개념은 모두 추상적 구성물이지만 씀씀이는 현저히 다르다. 수학에서, 개념들은 수학자 자신이 승인한 규칙에 적법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결합되고 관계될 수 있으며; 그와 같이 복합물에서 얻어진 새로운 추상은 새로운 조작 수준을 산출할 수 있다. 결과된 추상적 구조들 가운데 세상사 문제에 응용되는 게 발견되는 경우, 그 구조 고안자한테 기쁨은 주겠지만 이것이 수학이 추구하는 바는 아니다. 반면, 물리학에서는, 추상 과정이 이중으로 제한된다. 물리학에서 추상 과정은 반드시 논리에 부합되고 개념적으로 일관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 결과 역시 반드시 실험적 검사들을 견뎌내야 한다: 말인즉, 경험 상황들에 맞아들어야 한다. 요약하면, 수학은 자급자족적이며 그 목표는 자체 영역 안에 있다. 물리학은, 수학과 달리, 우리 경험 세계 조직화를 돕는 이론적 모델들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구로서 성분(成分)을 갖고 있다.


연구소 일상작업은 대개 고등학교 물리학 관련 문제들로, 상대성이나 양자 이론은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와 같은 이론 주제가 논의되는 콜로키움이나 모임들에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거기서 들었던 많은 건, 수년 전 내가 우리 세기(20c) 위대한 물리학자들 저작 여기저기서 인용했을 때 그 이론들을 잘못 해석하지 않았음을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그들 모두, 어떤 지점에 이르러, 진술했던 건, 이론이란 일단의 데이터로 자신들한테 강요된 것이라기보다는 발명되거나 구성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자연과학에서, 그렇다면, 연구 대상은 더 이상 그런 자연이 아니라, 바로 인간 문제들로 대면한 자연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로,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누구든 그 자신과 마주하고 있다. (Heisenwerg, 1955, p.18)

 

이와 같은 진술들은, 구성론자한테, 그리 진술한 물리학자들이 매일매일 작업에서 훨씬 강한 실재론적 자세를 택했다 하더라도, 반가운 확증에 해당된다. 문제 풀이자가 분투 중인 당면 경험 상황을 실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건 전혀 놀랍지 않지 않다. 그의 과제는 기술적(技術的)인 것으로 구획된 특정 경험 영역 내에 있고, 그 해결을 인식론적 숙고로 진전시킬 수는 없다. 오직 이것을 풀고 나서야 철학적 태도를 택할 수 있고, 자신의 답이 실재에 대한 재현(表象)이기보다는 경험을 조직, ‘설명하기 위한 도구라 결론지을 수 있다. 



2.

지난 100년 간,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내내, 과학은 그러한 실재하는 세상의 신비를 차츰차츰 벗겨낸 상식의 정교한 연장(延長)으로 간주되었다. 기술(技術)의 성공은 실재론적 인식론에 대한 의심할 바 없는 확증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때, 과학적 설명의 재현적 특성에 대해 내부로부터 의심을 야기시켰던 (특히, 이론 물리학에서) 대대적인 과학적 발전이 도래했다. 과학은 그 세상 자체의 특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가? 내가 앞 장에서 인용한 하이젠베르크 구절이 주장하는 건, 과학자는 보기와 생각하기의 인간적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객관성은 의심스런 것이 되었다. 야콥 브로노프스키는, 인생 막바지에, 변화된 상황을 묘사했다:

 

과학 개념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건, 그것이 자연 현상들에 대한 우리 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그 순간 그저 우리한테 다가올 세상의 그 일부를 가리우는 일시적 발명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Bronowski, 1978, p.96)

 


3.

갈릴레이의 유명한 제자, 토리첼리는 이를 아주 분명히 표현했다:

 

운동(de motu) 학설 원리들의 진위(眞僞)는 나한테 별로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참()이 아니라면, 그것들이 참인 것처럼 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한 다음, 그것들에서 끌어낸 여타 모든 추정(推定)들을 기하학적이자, 혼합되지(경험적(實驗觀察的)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이리 된다면, 갈릴레오와 내가 말했던 모든 게 그리 될 것이다. 그때, 쇠나 납 또는 돌로 된 공의 운동이 우리의 계산과 안 맞고, 원리들과 너무 심하게 어긋난다면,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것은 그것들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Belloni, 1975, p.30)


이 인용구는, 오늘날 과학철학에 활기를 주는 토론에, 과학과 그 이론들의 객관성이 다양한 입장들에서 쟁점이 되는 토론에 잘 들어맞는다. 구성론 관점에서, 양자론(量子論) 발명 훨씬 이전, 갈릴레이가 초반에 자연의 책은 수학 언어로 쓰여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믿지 않고, <수학이란 자연에 대한 인간 경험을 정리, 관리함에 있어 쾌나 말끔한 인간 방식이라는 생각>으로 더 기울었던 위대한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발견은, 물론, 고무적인 일이다.


물리학 법칙을 경험 장의 당혹스런 문제들에 적용, 이루어낸 광범위한 성공은, 곧바로, 과학 지식이 신비를 제물로 삼아 권위를 얻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와 달리, 철학자들은 실용적 성공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2000년 전통에 따르며 운명처럼, 그들은 절대적 리에 몰두했다.



4.

이러한 문제를 무시하고, 콘라드 로렌츠 작업을 시작으로 발전된 진화론적 인식론 운동은, 특히, 도날드 켐벨이 그 인식론에 부여한 확장된 형식에서 상당한 기세를 얻었다; 그는 그것을 가설적 비판적 실재론으로 특징 지웠다. 켐벨은 <공간, 시간, 그리고 인과성 개념들은, 칸트가 생각했던 바, 인간 이성의 아 프리오리 요소들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체가 우주에 적응한 결과다>라는 점에서 로렌츠와 의견을 같이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 물리학은 실재에 대해 훨씬 정교하게 다듬어진 견해(視角)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변이들이 몸의 형식 혹은 시지각물 혹은 과학적 이론까지 통제하고 있다 해도, Ding an sich(사물-자체)는 항상 간접적으로만, 언제나 알기 주체의 설정(假定) 언어로만 알려진다. 이러한 의미로,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반성(反映), <무수한 다소 부적합한 설정들에서 선택되어진 것>에는, 간접적이나마 일종의 객관성이 있다. (Campbell,1974, p.447)

 

그와 같은 객관적 실재에 대한 일종의 반성’[또는, 그러한 실재의 반영]을 전제(當然視)함에 있어 결점은, <<특정 시점에 바이어블(, 적응된) 것으로 입증된, <진화된 물리, 행동, 개념, 등등 구조>가 가능한 최상의 적응을 향한 필연적 도정(道程)에 있다>>고 믿을 여하한 근거도 없다는 점이다. 오늘날 생존한 것들을 보존한 자연 선택은, 우연한 변화들로 실제 야기된 변이들 중에서만 골라냈을 것이다. 이때 켐벨이 말한 무수한 다소 부적합한 설정들, 개념적 수준에서, 그 당시엔 불가결하게 보였던 기본 원리와 양립-불가능했기에 단연코 시도되지 않았던 훨씬 더 무수한 다소 부적합한 설정들을 배제하고 있다. 게다가, <유기체 적응 결과로 연 자체의 어렴풋한 구조가 알려진다>는 생각(觀念)은 생물학자들의 발견, <수백만 년을 진화 생존했음에도 그 종들 대다수가 특정 시점에 멸종되었다>와는 전혀 맞아들지 않는다.



5.

이때, 이러한 상위수준의 요동은, 만족할 만한 평형을 회복할 수 있기 전, 하위수준의 재구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과학의 역사는 이러한 종류의 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오늘날 이론 물리학자들한테 아주 곤혹스러운 것으로, 파동 개념에 기반한 모델은 일정 여건에서 빛의 현상에는 아주 잘 들어맞지만, 다른 실험 결과들 설명에 필요한 입자 이론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있다.

 


6.

실험관찰적(經驗的) 추상은 관찰 가능한 것들과 관련되며 반성적 추상은 정렬과 관련된다. (Piaget et al., 1977a, Vol. 2; p.319)

 

그래서, 두 종류 추상들은 그 원천이 외생적인가 내생적인가에 따라 구별될 수 있다; (Piaget, 1974c, p.81)

 

발생적 인식론의 정신(心的-定向)에 진입한 이라면, 이들 진술의 단순함에 속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표현들 관찰 가능한 것들외생적은 실재론적 의미로서 외부 실재의 외관이나 요소들로 해석되기 쉽다. 그렇지만, 지식에 대한 삐아제 이론을 보건데, 이것은 그 표현들로 의도했던 방식이 아니다. 사실, 각 인용구들 다음에 아주 적절한 경고들이 이어진다. 첫째 인용구 다음에, 삐아제는 여하한 특징도 자체로는 관찰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물리학에서조차, 그는 말하길, 측정된 크기(이를테면, 질량, , 가속도, 등등)은 그 자체 구성된 것이며, 고로, 선행하는 추상에서 얻어지는 추론의 결과다 (op. cit.). 둘째 인용구의 경우, 약간 더 뒤쪽에 추가하길: 기원에서 내생하는 형식들을 거쳐 내용으로 파악(把握)되는 것을 제외한 여하한 외생적 지식도 있을 수 없다. (Piaget, 1974c, p.83) 



7.

관찰과 재연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것들은, 주시된 그 과정과 관련해 주어진 것으로 간주된 아이템()들을 조작한다. 목하 그 과정은 그 아이템들을 요소들로 취하고, 이것들은 내용으로 정렬되어 새로운 형식또는 구조가 된다.

새로운 산출 결과들은, 장차 구조화 과정에서 내용이 되는 것과 관련해, 최초 주어진 것들로 취해질 수 있다. 따라서, 일단 특정 과정이 성취된 후 그 결과들은, 후속 정렬 과정 또는 더 높은 분석 수준과 관련해, ‘관찰 가능한또는 외생적인 것들로 간주될 수도 있다.

 

삐아제가 보았던 것처럼, 이는 무한 역행(退行)을 야기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ibid., p.306), 그는 이러한 생각(觀念)을 반박하는 최소 두 개의 논증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는 과학적 분석에 대한 그의 구상에서 나온다. 자신의 이력 아주 초창기에, 그는 이러한 과학적 분석을 일종의 순환 프로그램으로 보았다; 과학의 한 분과에서 추상된 일정 요소들은 다른 분과에 주어진 것들이 되어 정렬과 추상에 사용된다. 초기 논문(Piaget, 1929)과 약 40년 후 과학의 분류’ (Piaget, 1967a, 1967c)에서, 그는 과학 분과들의 이러한 호상간 상호의존성을 닫힌 변화 사이클로 정식화했다: 생물학->심리학->수학->물리학, 다시 생물학으로 도는 폐회로. 삐아제 조망에서, (終結)없이 나아가는 선형(螺旋形)적 진보(前進)란 있을 수 없다; 그저 한 분과의 새로운 정렬과 개념 창출을 야기하는 다른 분과의 방법과 개념들의 발달만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의 개념적 골조에 가한 분자와 입자 물리학의 최근 충격(影響)은 멋진 보기일 수 있다 (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연구비가 현대 물리학 개념들이 수학 개념들의 도움으로 심리적 선점책(先占策)에서 발전했던 방식에 대한 연구에 제공되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객관적 실재


그렇지만, 사이버네틱스 연구자들을 객관성 도그마에서 일탈하도록 북돋는 가장 강력한 확증은 과학의 가장 견고한 것들에서 나온다. 물리학에서, 관찰자 문제는 20세기 초에 대두되었다. 상대성 이론들과 양자역학이 제기한 가장 직접적 의문은, 그것들이 객관적 실재에 속하는 것들인지, 그보다는, 관찰에 의해 결정된 세계에 속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사실인지 하는 것이었다. 한 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실재론적 해석이 최종적으로 우주는 동질 배열 상태라는 견해로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이와는 다른 방향을 취했다. 길고긴 일련의 입자 실험들 가운데 가장 최근 실험들은 실재론의 승산을 줄여왔다. 여기 맥락에서 실재론이란, 누군가 입자들을 관찰하기 전에도 그것들은 관찰되고 있다는 신념이다. 물리학에는, 물론, 끝이 없을 것이다. 새로운 모델들이 구상될 수 있으며, 객관적이자 관찰자와는 독립된 실재라는 관념이 재차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물리학 이론과 실험들은 사이버네틱스 연구자들의 견해를 확증하고 있다: , 지식은 객관적인 실재의 그림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며, 그렇기보다는, 경험을 조직하는 특정 방식으로 여겨져야 한다.


가르치기 방법들


1.

지각 소재들

다르지 않게, 내가 수업 보조물들에 부여한 역할이 그러하다: 수 블록과 막대들부터 물리학 연구실의 실험 시연들까지 교실에서 사용되는 지각적 소도구들과 배치들의 역할이 그렇다. 너무도 자주 모든 교사들은, 그들이 전하려는 추상적 개념과 관계들을 그들이 펼쳐 보이는 물리적 소재에서 명백하게 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수학 교사들은, 수 관련 상징들에 대한 그들 접근이 하루 이틀에는 획득되지 않는 습관들로 통제되고 되고 있음을 잊는 경향이 있다. 비슷하게, 과학 교사들도 그들 자신의 찾고 보는 방식이 물리학자의 운동, 전기 이론에 대한 다년간 숙지(熟知)로 말미암아 조건 지어진 것임을 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들 세계 그림의 핵심이 되었던 개념적 처신의 특정 패턴들은 이해하기 쉽지도 부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잊는 경향이 있다.



2.

앤디 디세사, 로잘린드 드라이버, 존 클레망, 그리고 그밖에 많은 훌륭한 연구자들이 수행했던, 물리학 교육 연구가 보여주었던 것은, 학생들은 게임에서 사용된 자동차, 발사체, 그리고 다양한 공들의 운동에 관한 이론들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이들 앞구상(先入觀)들이 문제된 현상들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설명과 전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것들일지라도, 그것들은, 짐 민스트렐(1992)이 입증한 바와 같이, ‘정답들이며, 학생들한테는 그들 일상생활에서 아주 잘 작동하는 것들이다. 그들 아이디어들은 ()’이 아니니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복종적 립서비스를 얻어낼 수는 있겠지만, 이해하기를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스킴이 기대된 또는 바라던 결과를 내오고 있는 한, 조정(調節)은 통상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變化) 발생 조건은, 스킴이 실패할 때 또는 다른 성공적 스킴과 모순이 표면화될 때다. 그럼에도, 탁월한 물리학자들한테조차 실상이 아닌 것은, 확립된 이론의 단 한번의 실패로 그들이 그 이론을 버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1962)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주어진 패러다임 속 정상 과학은 그 패러다임을 의문시하는 예외(變則)들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아주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된다. 고로, 수업 중 한 번의 증명으로 학생들이 그들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것으로 찾아냈던 오개념(誤槪念)’을 포기하기에 이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상당히 순진(素朴)한 바램이다



3.

잭 록헤드는, 물리학 강좌들에서 학부생들과 함께 작업하며, 빈번하게 그들한테, <그들이 교과서에서는 본 적이 없는, 하지만 이미 습득했으리라 여겨진 물리학 지식이 부과되었기에, 그 접근 방식은 알고 있어야 하는> 문제들을 냈다. 그는 그들한테 앞에 나와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설명하도록 북돋았다. 이와 같은 수업에 대한 보고서들(이를테면, Lochhead, 1988)은 대다수 교사한테 지침을 주는 읽을거리일 것이다. 이것들은, 어떻게 해서 물리학 개념과 법칙들이 자주 잘못 이해되거나 해석되는지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행하고 기술하는 것이 통하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 찾아내는 배우기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또한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와 같은 자기-발생적 위기의 순간들은 그 어떤 외적 비판보다도 훨씬 더 개념적 조정을 용이하게 만든다. 그 순간들이란, 교사가 옳은/바른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의 절차에서 무시된 혹은 역효과를 초래한 인자로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가장 유력한 도우미가 될 수 있는 순간들이다. 가르치기란, 고든 파스크가 자주 말한 바와 같이(e.g., 1961, p.89), 대화의 한 형식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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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경험(experience) [1] 나공 2014.08.14 1679
148 관찰(observation) 나공 2014.08.13 842
147 대상 영속(object permanence) 나공 2014.08.13 785
146 대상-개념들(object-concepts) 나공 2014.08.13 741
145 세계, 세상, 그리고 양자를 포괄하는 세상에 대한 구별 나공 2014.08.13 1858
144 세상(A World behind The World Constructed) 나공 2014.08.13 841
구성에 성취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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