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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experience)

2014.08.14 13:00

나공 조회 수:1679

1.

비잔틴 사상가들이 인간 개념으로는 창조주의 본질적 특성을 파악할 수 없다고 단언했을 때, 그들은 신학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 개념은 우리 경험에 기초해 형성된다는, 따라서 우리 경험 장() 밖에 놓인 것을 기술하는 데는 사용될 수 없다>는 논증은, 초인적인 (entity)’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 너머 우리가 단정(斷定)한 그 어떤 실재에도 적용된다. 에리우게나가 이때 강조했던 것은, <이성은 그 자신의 규칙에 따라 작동하지만 그것을 초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래, 칸트를 보라). 


2.

경험론자들이 동의하는 건, 지식은 경험에서 비롯되고 그 지식 검사의 기반은 경험이란 점이다. 하지만, 경험이 그 너머 실재 세상과 맺는 관계 방식에서는 현저히 다른 시각들이 있을 수 있다. 오늘날, 그럼에도, ‘콧대 센 경험론자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 표현으로 전파하려고 한 건, <관찰자와 독립된 실재 세상의 특성이나 상태를 반영(反映)하는 데이터는 실험 증거에서 얻어진다>는 점이다. 이들 영국 경험론자들 모두 이와 같은 소박 실재론자는 아니었다


3.

<로크의 경험론이 모든 지식은 감지(感知)들에서 직접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 주장했다>는 신화가 엄청 강화된 건, 그가 사용한 용어 경험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다. 로크한테, 경험에는, 감지 관념들 획득하기뿐만 아니라, 그것들 보유하기 그리고 이어 반성과 추상으로 갈고 다듬는 것까지 포함된다 (Fraser, 1959; p.49를 보라).


4.

<감지(感知)들의 지각이 그 자신을 닮은 외부 대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아닌지> 하는 의문에 관한 흄의 다음 구절을 숙고할 때다:

 

문은 어떻게 결판날 것인가? 단연코, 경험으로다; 연 자체에 대한 여타 모든 문들처럼. 하지만, 여기서 험은 침묵이며, 전적으로 함묵(含黙)일 수밖에 없다. 마음은 지각들 말고는 자신한테 여하한 사물도 제시할 수 없기에, 그 지각들을 상들과 결하는 여하한 험도 결단코 불가능하다. 고로, 그와 같은 결을 정하는 건 아무 거 없는 추리다. (ibid., Essay xii, Part I) 


5.

따라서, 인간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성이 접근했던 소재, , 경험 소재로 만들어진 사물들뿐이며, 바로 그 만들기를 통해 그 사물들에 대한 지식은 생겨난다. 내 아는 한, 비코야말로 <우리의 합리적 지식은 우리 자신들이 구성하고 있다>는 걸 모호하지 않게 진술한 최초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종교인이었기에 형이상학에도 발을 담고 있었다. 해서, 신비적 지식을 해명하고 싶었다. 그가 해낸 간단하며 동시에 효과적인 방식은 지식을 두 종류로 나누는 것이었다: 일상 경험과 과학 세계를 참작(參酌)하는 합리적 지식’; 그리고 촉지(實存) 가능한 세계 너머 있는 전부를 참작하는 시적 지혜’. 


6.

이제껏 내가 용어 형이상학으로 가리킨 건, 세상을 인간 경험 영역과 그 너머 있으리라 생각(假定)된 것들 모두로 통째로 묘사, 기술하려는 시도들이다. 이 용어가 칸트 저작에서 한층 복잡해지는 까닭은, 그 용어를 혼동하기 쉬운 표현들, transcendental(先驗)transcendent(超越)로 명백히 차별화시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성을 사용한 자신의 분석적/비판적 탐구를 선험 철학[아 프리오리(경험과 독립된) 요소들에 기초한 철학]’이라 부르며 규정하기를, 이 철학은:

 

이해하기(悟性)과 이성을 다룸에 있어, 주여진 사물을 당연시하지 않고[존재론 없이], 대상-일반을 참작하는 개념과 원리들의 체계로 다룬다. 두 번째(초월)는 주어진 대상들의 총합 - 그 대상들이 감지들에, 당신이 원할 경우, 또 다른 어떤 직관에 포착되든 않든 - , 연을 참작한다. (Kant, 1787; p.873; 내 강조)


두 번째 초월에 속하는 모든 건, ‘사색적이며 경험 가능한 경계를 벗어난 것임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내 생각에, 그 초월 부분이 합리적으로 납득 불가능한 까닭은, 거기에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언어와 개념들>이 채택될 수밖에 없고, 고로, <그것들>경험 경계 너머까지사용하는 건 <그것들>의 적용 범위가 <그것들>이 형성된 영역 너머까지 뻗어가고 있다는 전제(當然視)를 암묵적으로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코와 견해를 같이하며, 초월적인[일상 경험의 한계를 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오직 시적 은유로만 말해질 수 있을 뿐이며, 하여, 신비적 권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7.

이후, ‘아는 능력’(그의 인간학(1800) 1, vom Erkenntnisvermög en)에 대한 에세이에서, 칸트는 감지들에 대한 그의 접근을 설명하면서, ‘출연(appearance)’에 대한 생각(觀念)으로 되돌아간다:

 

감지들의 지각[의식을 동반한 실험관찰적 제시들]은 오직 내적 출연이라 불릴 수 있을 뿐이다. (매니폴드에 질서를 세우는) 사고 규칙으로 그 출연들을 합치고 연결하는 이해에 이르기 전까지, 그것들실험관찰적 지식, 경험이 아니다. (Kant, 1800, Werke, Vol. Vii, p.144)

 

칸트의 용어, 매니폴드(das Mannigfaltige)는 또 다른 핵심(key) 개념을 지시하고 있다. 이 개념은 오직 <칸트 이론의 기본 전제>와 결부될 때만 이해될 수 있다; 그 전제란, <공간과 시간은 인간 이성이 모든 경험에 박아 넣는 기본 형식들이다>. 이들 형식들이 아 프리오리인 것은, 이성 기능하기에 고유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니폴드는 구성 지각과 이성의 조작 대상인 -재료다. 이것을 윌리엄 제임스는 만발해 파르르 떠는 엄청난 혼돈이라 불렀다(James, 1962, p.29). 이것은, 오늘날 신경 생리학에서는, 그 시스템의 감각 기관들이 연속적으로 발생시킨 전기화학적 임펄스들의 총체라 말할 수 있다. 설사 이들 임펄스들이 일종의 존재적(ontic) 기층에서 생기는 차이들로 야기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질적으로는 모두 같기에 질적 정보를 나를 수는 없다.


따라서, 경험이란, 생각하기 주체가 매니폴드의 요소들로 정렬한(구성한) 것이다 - 그리고 오직 특정 사물들만 구성되고 그밖에 것들은 구성되지 않는다는 건, 이성의 구조에 따라 결정된 사실이다; 이 구조가 바로 칸트가 자신의 선험 철학, 1의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 철학을 합리적 관념론이라 부르는 것은 정당하다. 이 철학이 제안하는 모델은, 이성이 자기 자신으로 구성하여, 우주에 대한 견해를 전적으로 관념들로 환원시킨, 고심이 깃든, 독창적 모델이다. 이성 영역 너머 놓이는 그 무엇에 대해서든, 칸트는 용어 누머논(noumenon)을 사용했다; 그리고 단언하길, <누머논들에 대한 전제(當然視)가 합리적으로 불가피할지라도, 그것들은 변함없이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네거티브신학자들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그의 불가지론 모델로 그보다 앞선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과 맞붙었다


8.

다음 페이지에서, 이러한 생각을 과학 탐구자한테 적용할 때, 분명해진 바, 그가 느슨한 표현 외적 환경으로 지시한 것은 독립된, 객관적 세상이 아니었다:

 

가설은, 다산성(多産性)이 그 첫째 조건이며, 경험과 충돌하는 순간 기꺼이 버려지는 바가 그 다음이다. (ibid., p.457)

 

그는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지, 그 자체로 있을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이것이 이렇다는 것은, 그의 실용주의 이론 맥락에서 그가 진술한 많은 것들로 알 수 있다 (e.g. James, 1907; p.49).

가설이 경험에서 확증될 경우에만 유지된다는 생각은 분명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생각이 생명체의 환경에서 살아남기와 유사하다는 것은 혁명적이었다. 가설은 살아남아야, 이론이 되고, 이어 추가 확증으로, 객관적 실재를 재현(表象)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사실적 설명 또는 법칙이 된다고, 생각되었다. 이제, 과학과 인간 지식 일반의 진보(進步), 유추로, 다윈의 생물학 이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지속적 진화(進化)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견해(視角)는 빠르게 퍼지며, 철학적 관념이 유포용으로 자주 단순화되는 것처럼, 하나의 슬로건으로 압축되었다. 실용주의는 리란 작동()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한 운동으로 알려졌다. 살아남아 재생산 가능한 것은 생물학적 진화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에, 개념과 아이디어들 영역에서도, 그 기준은 간편하고 유익한 걸로 여겨졌다. 제임스도 가끔씩 이러한 해석에 기여했는데, 이를테면, ‘실용주의적 견해에 대해 쓸 때였다:

 

우리의 모든 이론은, 일종의 도구로서, 신성한 신비-세상에 대한 계시(啓示)나 영지적(靈智的) 답변이기보다는, 실재에 대한 적응의 심적 양식(樣式)이다. (James, 1907/1955, p.127)

 

한편, ‘경험에서 확증이 훨씬 더 복잡한 사안이 되는 건, 그것이 생물학적 반응이나 속성을 수반할 때보다 개념적 구조를 수반할 때다. 개념적 수준에서 적응 양식은 유기체의 몸 수준에서 적응 양식과 같지 않다 (개념적 평형은 3장에서 논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일찍이 표명했던 바, 진화론적 접근으로

 

제거되는 것은, <독립된 진리 자체>, 그리고 알게 되어지는 세상과 실제 상호작용에서 < 경험 또는 선택>이라는 이원론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대한 경험이란 동시에 진리 창조이기 때문이다. (Simmel, 1895, p.44)

 

달리 말해, <오직 실재 세상을 반영하는 지식만을 참()이라 칭해야 한다>는 요청은 폐기되고 그 자리에, <지식은 우리 경험 세상에서 우리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발견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들어선다. 이러한 대안적 시각과 관련하여, 세상 경험 방식이 경험 환경 개념화를 돕는 가설과 지식에 의존한다는 점이 분명해지면, 문제 하나가 부상한다. 그 문제란, 하이젠베르크가, 자연 과학자들이 자연을 파고들면 들수록 그들이 보는 건 자기 자신의 개념들에 대한 일종의 반성임을 더더욱 깨닫게 된다고, 말했을 때, 가리켰던 것이다 (1장을 보라)




삐아제 이론


이는, <어떤 시점에 살아 있는 생물 유기체들은 그때까지 성공적으로 생존했기에 바이어블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관계에서 닮음이나 대응을 추론해내는 것은 부조리(non sequitur)이며 엄청난 사기(虛說)에 다름 아니다. 장애들과 충돌을 피했다는 것에서, 그것들이 무엇이며 그리고 그것들로 이루어진 실재가 어떻게 구조화될 수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충돌 또는 실패의 경험이 우리한테 말해주는 것은, 그저, 그 특정 경험 여건들에서 그 특정 스킴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더더구나, 그 실패는 그 세상 탓이 아니라 그 스킴에 내재한 암초나 모순 탓일 수도 있다. 역으로, 어떤 스킴이 성공한 경우,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그저, 그것이 작동했던데서 바이어블할 것이라는 점뿐이다. 이러한 바이어빌러티에서는 실재세상에 관한 그 어떤 추론도 끌어낼 수 없는 까닭은, 여타 무수한 스킴들 역시 작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지 모델의 가장 중요한 귀결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우리가 환경또는 실재 세상으로 범주화했던 것과 부딪힌 충돌들에 대한 우리 지식을 명확히 표현하며 재연하는 방식은, 오직, 바이어블한 개념 구조들, , 자체로는 아직 장애들과 접촉한 적이 없는 구조들에 입각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게다가, 충돌과 실패들에 대한 이러한 지식은, 기껏해야, 실재를 부정적용어들로만 기술할 뿐이다. 인지 구조들이 존재론적 실재를 반영할 수 있으리라는 여하한 생각도 환상이다: 이를테면, 사물-자체들의 표면을 따라 <우리 감지들을 미끄러뜨리거나 도구들로 가늠하기>로 사물들의 존재적(ontic) 형상를 발견할 수 있다는, 그래서 의도적 접촉들을 기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우리가 움직이며 가늠하는 활동 영역으로서, 특히, 우리 움직임과 조작들이 투사되어 그려지는 영역으로서 시간과 공간은 우리 자신의 구성들이기에, 그것들에 기댄 여하한 설명도 우리 경험 세계를 초월할 수는 없다.


요컨대, 내가 삐아제 작업과 최대한 양립-가능한 것으로 찾은 인식론적 조망은 도구주의적 시각으로, 여기서, 지식은 경험자와 독립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조망에서, 인지 구조들 행위-스킴, 개념, 규칙, 이론, 법칙들 은 최우선적으로 성공이라는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들이며, 성공은, 궁극적으로, 유기체가 요동들에 직면해 그 자신의 내적 평형을 획득, 유지, 확장시키려는 노력들의 견지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


우리는 설명들을 정식화하고, 예측을 하고,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실재>인 우리 경험장(經驗場)에서 일정 사건들을 제어해낸다. 이 모든 일에, 그리고 특히 경영(經營)을 시도하는 경우에는, 우리가 상식이라 부르는 것들, 그리고 가끔씩 과학적 지식이 수반된다. 대체로 후자가 더 견고하다고 주장된다. 우리는 그것에 의지해 아주 놀라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인식론자들한테는, 그렇기에, 과학자들의 지식 구성 방법에 대한 주시는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오늘날 과학철학자들은, 이 주제를 놓고 갈가리 나뉘어져, 합리성을 그리고 지식 형성에서 그것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논쟁하고 있다 (이를테면, McMullin, 1988). 내 관점에서는, 과학자들이 실제 하고 있는 것들을 검토하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 움베르토 마투라나는 통상 과학적 방법이라 불리는 절차에 대한 유용한 기술(記述) 만들어냈으며, 이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그는 약간의 수정들을 거쳐 자신의 견해를 정식화했다. 네 단계로 나누어진 그 절차는, 어떤 현상 (어떤 경험 또는 일련의 경험들)이 설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 이행된다:

 

1. 현상이 관찰되고 있는 조건(제약)들은 반드시 (그 관찰이 반복될 수 있도록) 명시되어야 한다.


2. 관찰된 현상의 흥미로운 혹은 놀라운 면면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 지에 대한 설명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설적 메커니즘을 제안한다.


3. 그 가설적 메커니즘에서, 아직까지 관찰된 적이 없는 사건에 관한 예측이 연역된다.


4. 과학자들은, 이어, 그 메커니즘이 그 예측된 사건의 관찰을 야기하도록 하는 조건들을 생성시키는 일에 착수한다; 그리고 이들 조건들은 반드시 재차 명시되어야 한다.


네 단계를 통틀어, 문제시 되는 것은 경험이다. 관찰하기는 경험하기의 한 방식이며, 과학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 제약들로 규제되어야 한다. 가설들은 (이것들로 관찰들은 관계된다) 사물-자체들이 아닌 경험들을 연결한다. 예측들이 참작(參酌)하는 것, 역시, 경험 장 너머 어떤 독립된 세상의 사건들이 아닌 우리가 경험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 방식에서 보자면, 과학적 방법은 존재론적 실재라는 생각(觀念)을 지시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과학적 방법은 실행(操作)되어 그 결과들을 관찰자들의 경험 영역에 만들어낸다. 과학적 지식은, 그렇게, 우리가 아는 유일한 실재(現實), 경험(經驗)들을 다루는 대체로 신뢰할만한 방식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경험들 다루기란, 목표들 추구에 있어 대체로 성공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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