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은 RC(1995)의 주제어 색인에 기초해서, 주제어에 따라 번역문들을 정렬, 연결한 것들이다.
        칸트의 ‘선험적 기획’       

이제껏 내가 용어 ‘형이상학’으로 가리킨 건, 세상을 인간 경험 영역과 그 너머 있으리라 생각(假定)된 것들 모두로 통째로 묘사, 기술하려는 시도들이다. 이 용어가 칸트 저작에서 한층 복잡해지는 까닭은, 그 용어를 혼동하기 쉬운 표현들, transcendental(先驗)과 transcendent(超越)로 명백히 차별화시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성을 사용한 자신의 분석적/비판적 탐구를 ‘선험 철학[아 프리오리(경험과 독립된) 요소들에 기초한 철학]’이라 부르며 규정하기를, 이 철학은:

이해하기(悟性)과 이성을 다룸에 있어, 주여진 사물을 당연시 하는 바(존재론) 없이, 대상-일반을 참작하는 개념과 원리들의 체계로 다룬다. 두 번째(transcendent)는 주어진 대상들의 총합 - 그 대상들이 감지들에, 당신이 원할 경우, 또 다른 어떤 직관에 포착되든 않든 - 즉, 자연을 참작한다. (Kant, 1787; p.873; 내 강조) 

    두 번째 ‘초월’에 속하는 모든 건, ‘사색적’이며 ‘경험 가능한 경계를 벗어난 것임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내 생각에, 그 초월 부분이 합리적으로 납득 불가능한 까닭은, 거기에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언어와 개념들>이 채택될 수밖에 없고, 고로, <그것들>을 ‘경험 경계 너머까지’ 사용하는 건 <그것들>의 적용 범위가 <그것들>이 형성된 영역 너머까지 뻗어가고 있다는 전제(當然視)를 암묵적으로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코와 견해를 같이하며, 초월적인[일상 경험의 한계를 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오직 시적 은유로만 말해질 수 있을 뿐이며, 하여, 신비적 권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칸트의 ‘transcendental philosophy(선험 철학)’은 인간 오성(이해하기)에 대한 순수 합리적인 분석이며, 그것이 제공한 모델은 많은 방면에서 구성론적 방향에 기초 역할을 하고 있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 서문에서, 자신이 보기에, 우리의 알기, 즉, 인지의 산출물을 탐구했던 이전의 모든 시도는 ‘학의 확실한 발판’을 딛고 전진한 게 아니라고 언급한다.(1787, p.vii) **  그 근거는 바로:

**칸트는 Erkenntnis란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knowing에 상응하는 독일어 어근이 아닌 cognizing에 상응하는 어근을 담고 있다 ; 그래서 나는 이 단어를 ‘인지(cognition)’로 옮겼다. 
 

여태껏 대상에 모든 인지가 들어맞아야 하는 것으로 당연시했다 … 만약, 대상이 우리 인지에 들어맞아야 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 향후 우리는 더 얻을 게 있는지 찾아내려고 할지도 모른다. (Kant, 1787, p.xvi) 

    갈릴레이, 토리첼리, 그리고 여타 과학자들에 대해, 칸트 왈, 그들은 ‘빛을 보았다’: 

<이성은 자신의 디자인에 따라 그 자신이 산출한 것만을 납득할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이해했다 … 

… 한편, 이성은 자신의 원리들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으며, 오직 그 원리들과 부합될 때에야, 출연[appearance(外樣), 현상(phenomenon)]들은 법칙들로 간주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성의 자연에 대한 접근은, 교사가 하고 싶은 말에 귀기울이는 학생과 같은 태도가 아닌, 목격자들한테 질문하고 대답을 강제하는 임명된 법관과 같은 태도여야 한다. (Kant, 1787, p.xiii) 

    위 인용구 첫줄은 천 년이나 앞서 에리우게나가 썼던 것의 요약일 수 있다. 그걸 썼던 의도는, 이성은 신비주의자의 지혜를 침범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칸트한테, 이 첫 줄은 모든 합리적 알기에 대한 그의 분석의 전제였으며, 그의 깜냥들의 갈등(1798)에서 요약되었다. 

이해하기(悟性)는 인간의 전적으로 능동적인 권능이다; 그것의 모든 관념, 개념들은 단지 그것의 피조물이며, 외부의 사물이란 단지 오성의 작업을 야기하는 계기에 불과하며 ... 그 작업의 산물이 바로 관념과 개념들이다. 따라서, 이들 제시들(Vorstellungen) 개념들이 준거(指示)하고 있는 사물들이란 우리 마음이 자신한테 펼쳐 보일 수 없는 것들이다; 왜냐? 마음은 실재하는 사물들이 아닌 오직 그 자신의 대상들 보여주기만 창조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말인즉, 이들 제시와 개념들로 사물들을 그 자체로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Kant, 17 98, Werke, Vol. Vii, p.71)


** 단어 Vorstellung은 칸트 철학의 핵심(key) 용어다. 이 단어가 ‘representation 재현(혹은 표상)’으로 번역될 때, 어긋난 길로 들어서는 건, 이 단어가 재현되는(혹은 겉으로 드러나는) 원본이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여기 인용문의 끝단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건, 칸트가 이 단어를 통상 독일어에서 쓰이는 것처럼, 말인즉, 원본의 복사본이 아니라 <자신한테 자발적으로 제시(提示)한 그 자체>를 지시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단편에서 생기는 의문: 도대체 사물들을 그저 인간 상상물이 아닌 ‘외적인’ 걸로 간주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칸트의 답은 극히 난해해서, 내가 잘못된 해석들로 여기는 다양한 독해의 여지를 남겼다. 

우리 감지들과 우리 이해하기(悟性)가 우리한테 제시한[펼쳐 보인] 사물들은 인과적 계기와 오성의 결과가 발생시킨 산물들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그저] 출연(出演)[불과한] 것들이 아닌 까닭은,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그것들을 실재하는 사물들이자 우리 제시들의 대상들로 간주할 수 있다는 바에서 - 그러한 인과적 계기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실재하는 사물들이라고 반드시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ibid.)


    ‘반드시 가정해야 한다’는 지극히 중요한 대목이다. 이 문구에 대해, 실재론자들은 <칸트 이론은 실제 ‘사물-자체들’로서 실재하는 사물들의 실존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쪽으로 읽기를 원한다. 이것은 오독이라 생각한다. 그런 기대와 달리, 칸트가 여기서 말하는 필요란, ‘일상생활’에서, 특히, 우리와 타자들의 행위들을 상호 협조적으로 정렬시키고 싶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칸트가 많은 곳(이를테면, 1787; p.591, 610)에서 반복한 사물-자체는 ‘발견적 허구’(1787, p.799)로 기능하는 ‘생각(思惟)의 산물’(Gedankending)로 의도된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시간과 공간으로 구조화되는 <여하한 존재적(ontic) 실재에 대한 구상>도 감당한다. 그와 같은 실재가 허구임에도, 필수적이 되는 것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목적 때문이다.  
 
    이후, ‘아는 능력’(그의 인간학(1800) 1절, vom Erkenntnisvermög en)에 대한 에세이에서, 칸트는 감지들에 대한 그의 접근을 설명하면서, ‘출연(appearance)’에 대한 생각(觀念)으로 되돌아간다: 

감지들의 지각[의식을 동반한 실험관찰적 제시들]은 오직 내적 출연이라 불릴 수 있을 뿐이다. (매니폴드에 질서를 세우는) 사고 규칙으로 그 출연들을 합치고 연결하는 이해에 이르기 전까지, 그것들은 실험관찰적 지식, 즉 경험이 아니다. (Kant, 1800, Werke, Vol. Vii, p.144)

    칸트의 용어, 매니폴드(das Mannigfaltige)는 또 다른 핵심(key) 개념을 지시하고 있다. 이 개념은 오직 <칸트 이론의 기본 전제>와 결부될 때만 이해될 수 있다; 그 전제란, <공간과 시간은 인간 이성이 모든 경험에 박아 넣는 기본 형식들이다>. 이들 형식들이 ‘아 프리오리’인 것은, 이성 기능하기에 고유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니폴드’는 구성 지각과 이성의 조작 대상인 원-재료다. 이것을 윌리엄 제임스는 ‘만발해 파르르 떠는 엄청난 혼돈’이라 불렀다(James, 1962, p.29). 이것은, 오늘날 신경 생리학에서는, 그 시스템의 감각 기관들이 연속적으로 발생시킨 전기화학적 임펄스들의 총체라 말할 수 있다. 설사 이들 임펄스들이 일종의 존재적(ontic) 기층에서 생기는 차이들로 야기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질적으로는 모두 같기에 질적 정보를 나를 수는 없다.
 
    따라서, 경험이란, 생각하기 주체가 매니폴드의 요소들로 정렬한(구성한) 것이다 - 그리고 오직 특정 사물들만 구성되고 그밖에 것들은 구성되지 않는다는 건, 이성의 구조에 따라 결정된 사실이다; 이 구조가 바로 칸트가 자신의 선험 철학, 제1의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 철학을 ‘합리적 관념론’이라 부르는 것은 정당하다. 이 철학이 제안하는 모델은, 이성이 자기 자신으로 구성하여, 우주에 대한 견해를 전적으로 관념들로 환원시킨, 고심이 깃든, 독창적 모델이다. 이성 영역 너머 놓이는 그 무엇에 대해서든, 칸트는 용어 누머논(noumenon)을 사용했다; 그리고 단언하길, <누머논들에 대한 전제(當然視)가 합리적으로 불가피할지라도, 그것들은 변함없이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네거티브’ 신학자들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그의 불가지론 모델로 그보다 앞선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과 맞붙었다. 

    서양 철학 출발부터, 인간 이성이 구성한 지식은 어떤 식으로든 독립된 실재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대다수 사상가한테, 그 관계는 재현(表象)의 일정 형식을 취해야 했다: 십중팔구, 불완전한, 뜬구름 같이 떠올랐다 사라질 재현(表象)일지라도, 실재의 몇몇 측면들만이라도 정확히 해석하는 그림이어야 했다. 이러한 접근 권능을, 버클리와 비코는, 이성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고, 그래서 그들은 그 곤란을 모면코자, 각자 방식으로, 저 실재 세상과 연결을 인류 모두의 창조자, 신을 경유해서 만들었다. 플라톤에서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관념론과 합리론의 모든 철학자들은 그들 체계들이 유아론으로 미끄러지는 걸, <말인즉, 세상에는 생각(思惟)하는 이의 주관적 마음을 제외한 그밖에 어떤 실존도 없다는 생각(思想)에 빠지는 걸>, 피하고자 신에 대한 생각(觀念)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들였다.
 
    이어, 칸트는 신의 실존을 합리적으로 증명하고자 한 이전의 모든 시도를 체계적으로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는 신의 부존(不存)에 대한 합리적 증명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고, 고로, 신앙인들은 신 실존에 대한 부인 불가능성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1787, pp.770, 781). 사물-자체의 경우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는 강변(强辯)하기를: 세상에 대한 전능한 창조자를 당연시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불가결하다; 하지만, 그 창조자가 우리 지식에 추가되지 않는 건, ‘그것 자체로는 무엇일지에 대해 여하한 구상도 할 수 없는 바’에 대해 무언가를 전제(當然視)하는 것 이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pp.7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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