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종교, 그리고 과학

2014.04.14 21:00

나공 Views:578


I. 

이 글은 이상 세 가지 주제로 종교적 믿음이란 형용 모순이다란 걸 설명하고자 몇 년 전에 썼던 것을 조금 수정해서 올린 글이다. 종교와 믿음은 양립 불가능하다는, 즉, 종교란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관점과 주장에서 보자면, 오늘날 확립된 종교들, 특히 경험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믿음을 강하게 요구하는 종교 활동은 미필적 사기 행각에 다름아니다. 

여기서, 종교적 경험, 즉, 일상의 경험을 넘어서는 영적 체험으로 일컬어지는 개인들의 신비적 체험들은 전적으로 합리적 영역을 벗어나는 것들이기에, 통상 말하는, 이해될 수 있는 경험과는 달리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신비적 체험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체험이 그리 빈번하게 나타나는 걸로 보지도 않거니와 설사 그러한 체험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신비적 체험인지 아니면 본인의 상상적, 또는 무의식의 어떤 현시인지 합리적으로는 분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러한 체험이라고 본인이 여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확인할 수도 입증할 수도 없기에 그것을 타자에게 언급하거나 사실이라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자들의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II. 

"믿음"이 생겨나는 기원은, '스킴(scheme)'의 성공과 관련되어 있다. 스킴은 아주 단순한 방금 태어난 아이의 행위패턴, 즉, 반사에서부터지금 내가 이 글을 쓸 때 작동하고 있는 스킴에 이르기까지를 가리킨다. 

스킴들에, 공통된 바는 지각, 목표, 행위로 구성되지만, 복잡해지는 경우,상황을 인식하는 견해, 또는 세계관,목표를 조성, 조정하는 문화, 또는 윤리, 적절한 판단에 필요한 개념 구조들, 적절한 행위을 연출할 학습된 조작들, 등등이 연계된다. 

믿음을 구성하는 것으로는,반복, 성공, 그리고 이 둘에 사용되는 개념이나 구조의 굳건함이다. 개념이나 구조의 강도는 논리적 정합성, 유용성으로 평가된다. 

마~~, 내용이야 어떻든, 믿음에 대한 이 정도 이해는 공유될 수 있겠다. 

III. 

그럼, 종교를 보자.종교의 기원은 인간 능력과 이해를 벗어나는 사건과 현상의 존재에 비롯된다: 초자연적 현상, 돌고도는 인간사 복잡다단한 인연들의 개인사로 진입들, 죽음.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은 '초자연적 현상'이라 칭하며, 이런 현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설명되고 이해되어 그 영역이 좁혀졌지만, 개인들의 경험 영역에서 나타나는 많은 것들은 설명되고 이해되기 힘들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오로지 그 개인의 알아차림으로서만 이해될 것들이기 때문에... 

과학은 반복적 자연현상을 다루며, 아주 가끔, 그리고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에는 거의 잼병이다. 과학은 자신의 성공을 연장하여, '모든 현상'에 대한 설명과 이해 가능성에 자신감을 공공연히 휘두른다. 과학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현대과학이 있고, 오늘날에는 패퇴한 각 시대 지역에서 사용된 과학적 방법들이 있었다. 과학이 겸손한가는 자신의 방법이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의 반복과 성공에 기초함을 이해하고 있는가 여부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예측할 수도 없는 영역을 인정하는 것이다. 

'돌고도는 인간사 복잡다단한 인연들의 개인사로 진입들'을 다루는 것은 오늘날 사회 과학이라는 칭해진다. 세계관에 따라, 구조가 설정되고, 개개인들이 배열되면, 구조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 구조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행하는 배우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로 그려진다. 정치적 일정들, 경제적 활동들에 대한 예측들이 가능해지고, 우리는 그렇게 행동한다. 부적응과 예외, 그리고 실패들에 뒤따른 가망 없는 기대들은 과학보다는 종교에서 주로 다룬다. 

삶은 특정 사회 구조가 부여할 수 있는 역할들에 대한 연속되는 선택수에 따르는 흐름에 다름 아니며, 종교에 귀의해 확립된 종교 또는 신생 종교에서 사회적 역할로서 그 일을 하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종교를 찾아 뭔가를 충족시키거나 죽음을 예비하는 이들한테 있어 그들의 활동은 사회적 역할이기보다는 어떤 소비 활동, 일종의 불량 식품 먹기와 같은 것이다. 해서, 이러한 삶은 자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있다. 

삶이 어떤 구조에서든 역할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는 사는 동안 적어도 하나 이상의 구조를 경험하며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나'라고 하는 자신의 정체성의 일관성을 얼기설기 엮어 유지하면서, 삶의 연속성을 정당화하면서 죽음을 내동댕이치고 부정하는 것이 대다수 현실이겠지만... 

우리가 보는 타인의 죽음이란 것은, 우리가 그 타자에 대해 설정한 모델을 우리가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자들한테 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타자들한테 그들이 나에 대해 설정한 모델을 그들이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일텐데... 

그들이 설정한 모델은 과연 나인가? 한발 더 나아가, 그 모델이 내가 아님을 깨닫는 나, 더 이상 정체성에 매이지 않는 나, 삶의 연속성에 매이지 않는 나, 죽음을 삶과 분리시키지 않는 나, 이런 나한테, '나는 몸을 떠나면 어데로 갈 것인가?'는 우문으로 다음 의문으로 대체될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습이 쓸모를 다할 경우 내가 새로운 습을 익힐 수 없는 경우, 그 '나'는 '어찌'될까?'다. 

하지만 답은 있을 수 없다. 왜? 종교의 영역으로 진입했으니까... 한번쯤 상상할 수는 있는, 그러나 반복될 수 없는, 확증할 수는 없는 영역이니까...다만, 삶에 붙었다 떠날 나에게(떠나는 너에게) 할 수 있는 말 한마디: Don't care. You will be, Their(Our) will be. Peace~ 

IV. 

과학의 성공의 연장은 일상에서 우리의 믿음의 연장과 다르지 않다. 

내가 믿는 사람이 근거가 있든 없든 누군가를 판단했을 때 그럴 것이라고 신뢰도를 준다. 이에 회의적 태도를 갖지 않을 경우, 편견과 편향을 갖게 되며, 당사자와 상호작용에서, 거의 예외없이, 그 신뢰도는 낮아지기보다는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말인즉, 나는 판단자의 경험의 연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위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우리가 과학의 권위를 쫓아, 그렇다고 하는 것을 '아하 그렇구나'하는 것은 일상의 신뢰할만한 이를 쫓거나, 종교적 권위를 쫓아 '그렇겠군' 하는 것과 진배없다. 이러한 류의 믿음의 연장은, 자신의 반복적 경험에 입각한 자신의 지적, 그리고 판단 발달을 중지, 지체시킨다. 

종교는 첨부터 나름의 과학과 분리되지 않았다. 설명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직설법과 은유로서, 둘은 구별되면서, 책임질 영역과 불가사의한 운명의 영역을 구별했다. 

하지만, 근대 과학의 등장은 종교로 하여금 과학과 경쟁케 하였고 참으로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했다. 나중에 형식적으로 화해는 했다지만, 양쪽 모두 치명상을 입고 절절거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의 주된 기술 방식은 직설이요 종교는 은유임에도, 양자는 여전히 서로가 상대의 주요한 기술 방식을 차용해 서로의 영역을 다투어 확장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현실에서 자신의 휘두르는 영역의 확대와 축소에 따라  이미 치명상을 입고 상처를 감추기 위한 발버둥들에 다름아니다. 현실이란, 사실들의 총체이며, 사실이란 반복적으로 나타난 현상들에 다름아니며, 구성된 실재/현실이 아닌, 현상 너머 대상들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실재/현실 영역이란 불가사의다. 절절거리면서도 발버둥치는 근본적 이유는 타자를 휘두르고자 하는 욕망에 다름아니다. 


오늘날 과학이 성공의 연장으로 불가사의에 대한 불경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면, 오늘날 종교는 본연의 자리를 떠나 불경을 일상적으로 노골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종교는 과학과 경쟁할 수 없다. 종교의 영역은 불가사의의 영역이며, 그래서 반복, 성공과 같은 단어들이 어울리지 않기에, 그 방법은 이 영역에 대한 반복될 수 없는 개인적 경험에 대한 은유며, 따라서 이를 통해서 과학의 휘두름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생명과 타인에 대한 경외의 태도며, 설명과 이해 불가능한 사건에 대한 용인이며,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나라 할 수 없는 "그"의 '어찌'에 대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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