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네틱스에서, 유기체 또는 반성자 관점에서 행하기와 지각하기 사이에 간격은 없다. 만약, 이 사이에 간격이 있다면, 양명학자였던 담원 정인보가 양명학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인 '양지' 즉 '본심'에 대해 언급하기를, “본심(本心)은 감통(感通)에서 살고 간격(間隔)에서 죽는다”라고 했던 것과 같이, 유기체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지각하기든 행하기든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가 불가한 상태, 즉, 행하기와 지각하기의 연결이 불가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유기체는 이 간격을 (실제로 자신이 구성한 내부 환경이지만 구성된 이후에는 밖에 있다고 여기는) 환경이 메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이 유기체를 관찰하는 관찰자한테 그 간격이란 관찰자가 구성한 그 유기체의 환경이다. 그 간격을 어떤 것으로 여기든, 죽음이란 더 이상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불가한 상태를 의미한다.

유기체가 자신을 개체로서 자각한 이후 관점에서, 그 간격이란, 앞서 유기체 내부 환경과 유기체의 상호작용 지점이나 유기체와 관찰자-구성-환경의 상호작용 지점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한 모든 것들에 변화를 야기하도록 강제하는,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공경의 이유를 제공하는 지점에 해당된다. 이제, 개체-자각 유기체한테 그 지점은, 더 이상, 장소나 어떤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지점은 언제나 구성된 내부 혹은 외부 환경이라는 그 간격을, 상상으로, 걷어낸 혹은 대체한 것에 다름아니다. 말인즉, 유기체가 개체로서 자신을 자각한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폐쇄된 체계, 즉 닫힌 마음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체-자각 유기체가, 알레고리로서, 확보한 지점을 향한 지향성, 혹은 영명성(靈明性)은, 아무리 명료하게 한다 하더라도, 이상 언급한 바와 같이 갈등과 실패들을 통해서만 귀결 또는 상상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여, 영성(靈性)이 이러한 한계 밖으로까지 연장되어 많은 상상의 원천으로 쓰여온 것이 지난 수천 여년,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결과들의 무지막지한 인간 마음의 파괴적 양상들에도 불구하고, 그 쓰임새의 분명한 한계 내 유용성에 대해 충분한 숙고들을 행한다면, 파심중적(破心中賊)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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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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