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의 법칙들 저자 G. 스펜서 브라운은 자신의 책, 앞 표지를 한 장 넘긴 페이지 전체에, 다음과 같은 도덕경 문장을 세로로 길게 써넣었다: 無名天地之始


그리고 에른스트 폰 글라저스펠트는 그의 책, 알기와 배우기 이론으로서 급진적 구성주의에서 첫 번째 에피그라프로 롤랑 바르트의 다음 문장을 써넣었다: The only given is the way of taking. 이 문장의 뜻은, (알 수 없는 하늘로부터) 부여된 또는 주어진 것은 단 하나 붙잡는 혹은 취하는 방식 뿐이다; 그래서,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경우, 혹은 그 세계를 이론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할 경우, 당신은 바로 이 방식으로부터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내야 한다. 말인즉, 붙잡은 것들, 아직 대상이라고 부르기 이전의 것들로부터, 인과 개념, 시간과 공간 개념, 수 개념, 그리고 대상, 타자들과 당신이 참이라 여기는 모든 것들을 재구성할 수 있다.


롤랑 바르트의 문장을 첫 번째 에피그라프로 글라저스펠트가 사용한 것은 그의 주의 이론이 개체의 알기 이론 구성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로크, 버클리, 흄에 이르는 지각 관련 논의에서 경험 너머 실체에 대한 가정을 완전히 제거하고 난 뒤,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개체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 바탕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은, 삐아제의 스킴들 또는 왕양명의 양지와 같은 것들과 함께 바로 '주의의 지각장에서 취하는 능력'이다.


자신을 개체로서 자각한 이한테, 도덕경 1장 첫구절,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이란, 도란 것이, 어떻게 정의하든, 각자의 경험에 대한 반성을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그것을 도라 할지라도 그 도가 타자들한테도 마찬가지로 도라 할 수는 없다는 것, 설사 그것들이 같은 도라 할지라도 비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며, 또한 각 개체들이 서로 통용하며 사용하는 단어들 또한 그에 대한 의미들을 서로 같다 하며 사용하지만, 실제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그것들이 항상 같은 것들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브라운이 이렇게 생각했으리라고,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생각하고, 그가 인용한 것은 다음 두 번째 구절의 앞 부분이다: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무명'이란 통상 말해지듯 '이름 없다'가 아니다. 즉, 어떤 대상에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대상이 있기 그 전보다 훨씬 더 이전, 어떤 무엇이다. 이에 대해 감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유명'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명 또한 대상이 있고 이어 이름 붙여진 그 무엇이 아니다. 그 훨씬 더 이전에서, 유명이란 가리켜진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무명은 아직 가리켜지지 전 무엇이다(상태라 하면,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기에 이때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이고 가리켜지는 것은 무엇인가? 가리키는 것은 주의고 가리켜지는 것은 주의가 공간을 가른 결과로서(여기서, 공간이라 한 것은 우리가 통상 인지하는 공간이 아닌 그저 주의가 가리키고자 한 쪽을 말한다) 어떤 것, 혹은, 지각장에서 주의가 구별해낸 어떤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또는 경험 주체가 일정한 시기에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면서 최초 구별이라는 것을 해낼 때, 하고 있는 바가 바로 '무명천지지시'에서 '유명만물지모'의 최초 시작을 행하는 것이다. 


형식의 법칙들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이제까지 가지고 쓰던 그 어떤 류의 논리보다도 단순하며 일반적인 형식이다. 이 형식이 시작되는 데 필요한 것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으로 ‘붙잡는 능력’의 또 다른 표현으로, 공간을 가르는 주의의 능력이다. 여하튼, 이러한 형식 조작으로 그는 역설을, 혹은, 재귀-준거를 다루는,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논리들로 변환 가능한, 그리고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응용성을 갖춘 형식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삐아제식으로 말하면, 아이가 아직 말을 배우기 전후, 타고난 스킴들 몇 개로 자신의 세상의 얼개들을 짜맞추는 것에 해당된다. 


요약하면, 브라운이나 삐아제한테, 무명천지지시는 자신들의 형식 전개의 바탕 공리를 도입하는 일, 즉, 브라운한테는 주의의 공간 가르기이고, 삐아제한테는 아이 혹은 스킴의 지각장에서 구별 행위일 것이며, 이어, 유명만물지모는, 앞서 '가리키기'로서 시작해서, 브라운한테는 일반 형식의 법칙들 구성이며, 삐아제한테는 아이 자신의 세계 창조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S.

이상, 글을 읽고 '무명'이 뭐야? 하고 질문하고 싶은 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첨언하면, 이런 걸 '발견적 허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도덕경 1장을 썼던 이가 누구든 이상과 같이 1장을 해석한다면, '도 & 무명'이란 정의내리고 시작되는 것이 아닌, '명 & 유명'이라는 우리의 경험 사례를 바탕으로 꺼꾸로 되짚고, 다시 재구성을 시작하기 전에, 바탕에 깔아야 하는, 우리가 물리학에서 '중력'이 갖는 지위에 부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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