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ierarchy of Disagreements


불일치의 위계: 동의하지 않음에 응대하는 방법

 

Paul Graham, 2008, 3

 

웹상에서, 글쓰기는 대화로 바뀌고 있다. 20년 전, 글쓴이는 쓰고 독자는 읽었다. 독자들이 웹상 포럼과 블로그 포스팅에 댓글로 응하는 것은 증가일로에 있다

 

뭔가에 응대한 많은 이들이 그 뭔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상되던 바다. 사람들을 북돋는 경향에 있어, 동의는 동의하지 않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동의하는 경우는 말할 게 별로 없다. 필자가 말했던 것을 확장시킬 수는 있지만, 가장 흥미로운 의미들은 아마도 앞서 탐구, 검토되었을 것이다. 동의하지 않을 경우, 당신은 필자가 아직 탐구, 검토하지 않은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특히, 말로 가늠되는, 생겨나는 훨씬 많은 불일치들이 있다. 사람들이 점점 더 화를 많이 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소통 방식의 구조적 변화는 이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화내는 것이 불일치를 증가시키는 것은 아닐지라도 불일치의 증가가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 위험은 있다. 직접 대면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것들을 쉬이 말하는, 특히, 온라인에서는 그렇다.

 

불일치가 더욱 강해질 경우, 그것은 매우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 잘 다루어야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대다수 독자들은 단순한 욕하기와 주의 깊게 추론된 반박 사이 차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 사이를 여러 단계들로 분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 불일치의 위계 하나를 제시한다.

 

DH0. 욕하기.

 

이것은 불일치의 가장 낮은 표현 형식이며, 아마도 또한 가장 흔한 것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댓글들을 보았을 것이다:

 

ㅂㅂ, ㅂㅅ, ㅁㅈㄹ 등등..!!!!

 

하지만 이런 류의 딱부러지는 욕하기는 거의 무게감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 필자는 잘난 체하는 호사가/아마츄어군

 

과 비슷한 댓글은, 정말이지, 딱부러진 욕하기의 허세부린 변형에 불과하다.

 

DH1. 인신공격.

 

인신공격은 단순한 욕하기만큼 그리 약한 게 아니다. 거기엔 실제 어느 정도 무게가 실릴 수 있다. 이를테면, 의원이 의원 급여를 인상해야 한다는 글을 쓴 경우, 나올 수 있는 반응으로,

 

당신이니 당근 그리 말하지, 의원이니...”

 

이걸로 필자의 논증이 반박되지는 않지만, 그 사안과 최소한의 관련성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매우 허약한 불일치 형식이다. 그 의원의 논증에 잘못된 것이 있을 경우,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가 의원이란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필자가 다루는 화제에 관해 쓸 자격, 혹은 권위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신공격의 변형태며, 좋은 생각들은 아웃사이더들한테서 자주 나오기에 그런 말은 정말 하나마나한 것이다. 문제는 필자가 맞는가 아닌가다. 그의 자격 부족이 실수들을 야기하는 경우라면, 그것들을 지적하라.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될 게 없다.

 

DH2. 에둘러 응대하기.

 

이 수준에서부터 글쓴이가 아닌 쓰여진 글에 대한 응대들이 시작된다. 이들 가운데 가장 낮은 형식이 필자의 논조에 대한 불일치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필자가 그와 같은 기사도 풍의 지적 디자인을 무시하다니 믿기지 않는군

 

이러한 표현은 필자를 공격하기보다는 이러면 더 좋았을 것을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약한 불일치 형식에 해당된다. 이 응대 형식은 논조가 무엇이냐 하는 것보다는 그 필자가 맞냐 틀리냐 하는 걸 더 문제시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너무 강한 판단의 논조를 취하는 경우 그렇다. 화제를 붙들고 한 판 하는 이는 여타 독자들한테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논조로 공격당할 수 있다.

 

해서, 관련해 가장 나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불일치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 논조에 대한 비판을 택한다면 할 말이 별로 없다. 경솔하긴 하지만 하는 말은 맞지 않는가. 그렇다면, 심각하게 잘못된 거보다는 더 낫지 않은가. 그리고 어딘가 잘못이 있다면 그걸 말하라.

 

DH3. 반대.

 

마침내 이 단계에 이르러 방식이나 사람에 대한 것보다는 말해진 것 자체에 대한 응대가 나타난다. 논증에 대한 가장 낮은 응대 형식은 거의 또는 아무 뒷받침 증거도 없이 반대되는 경우를 단순히 진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는 종종 DH2 진술들과 결합된다: 이를테면,

 

필자가 그와 같은 기사도 풍의 지적 디자인을 무시하다니 믿기지 않는군

지적 디자인이란 합당한 과학적 이론인데.”

 

반대에는 때때로 상당한 무게가 실릴 수 있다. 때때로 명확히 진술된 반대 경우를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옳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증거를 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DH4. 반대논증.

 

레블 4에서, 설득력 있는 논증의 최초 형식, , 반대논증이 나타난다. 이전까지 형식들은 통상 아무 것도 입증하지 않기에 무시될 수 있다. 반대논증은 무언가를 입증할 수 있다. 문제는, 정확히 무엇을 말할 것인지가 어렵다는 점이다.

 

반대논증은 반대에 추론 그리고/또는 증거를 더해서 조성된다. 최초 논증을 정면으로 겨눌 경우,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반대논증들은 약간 다른 것을 겨누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뭔가를 놓고 열나게 논하고 있는 두 사람은, 자주, 실제로 상이한 두 개의 사안들에 관해 논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서로한테 동의하기도 하지만, 사소한 언쟁에 사로잡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최초 글쓴이가 말했던 것과 약간 다른 것을 논하는 것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렇다. 하지만 그리할 때는 그리하고 있다는 걸 명확히 말해야 한다.

 

DH5. 반박.

 

불일치의 가장 설득력 있는 형식은 반박이다. 또한, 이것은 최고의 작업이기에 아주 드물다. 실상, 불일치의 위계는 일종의 피라미드 양식을 띠고 있다; 올라갈수록 눈에 띠는 경우가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다.

 

반박하려면 필시 반박할 것들을 인용해야 한다. “명백한 증거”, 실수/오해라 생각되는 동의하지 않는 구절을 찾아내야 하고, 이어 왜 그것이 실수/오해인지 설명해야 한다. 불일치하는 실제 인용구를 찾지 못하면, 허수아비와 다투는 격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반박에는 인용하기가 수반되지만, 인용하기에 반박이 필히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글쓴이들은 합당한 반박의 모양새를 취하고자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의 일부를 인용한 다음, DH3 반대나 또는 DH0 욕하기 같은 낮은 응대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DH6. 핵심 반박하기.

 

반박의 힘은 반박할 대상에 달려 있다. 불일치의 가장 강력한 형식은 상대의 핵심을 반박하는 것이다.

 

반박과 같은 높은 위계에서조차 여전히 가끔씩, 논증의 사소한 점들을 찍어내 그것들을 반박하는 것과 같이, 의도적 부정(不正), 속임수를 볼 수 있다. 때때로 이런 식으로 논증을 실제 반박보다는 인신공격의 정교한 형식으로 만들어버린다. 예들 들어, 문법을 수정하거나 이름이나 수치들의 사소한 실수를 연달아 거론하는 따위가 그에 해당된다. 반대 논증이 실제로 그러한 것들과 의존 관계가 없는 경우, 그것들을 수정하는 유일한 목적은 상대의 신뢰성을 깍아내리려 하는 것이다.

 

진실로 뭔가를 반박하려면 그 핵심을, 최소한 하나라도, 반박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는 핵심이라 하는 것에 명확히 전념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서, 진실로 효과적인 반박은 다음과 같이 보일 것이다:

 

필자의 요점은 X로 보인다:

(인용....)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잘못된 것이다:

논증1, 논증2, 논증3, ... ”

 

실수한 것으로 지적된 인용구나 절이 필자의 (핵심을 표현한) 실제 진술일 필요는 없다. 요점이 의존하고 있는 뭔가를 반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DH7. 더 나은 논증을 구성으로 핵심 반박하기<혹은, 반대편 이해하기 노리기>.

 

[이 위계]는 블랙 벨트 베이지언이 최고 수준으로 추가했지만, 그 제시된 바를 역자 나름대로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에 몇 자씩 추가했다. 그가 쓰기를, “논증이 구성되면 그 논증에 관해 <어떤 관점 혹은 뷰에서 구성되었는지> 배우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관점들에서> 구성되었을, 하지만 그러지 않은 논증들에 대해서도 자주 배우게 된다. 가끔씩 그러한 논증들은 최초 논증이 작동하지 않았던 지점에서 작동하기도 한다. 논쟁의 찬성 편에 관심이 있으면 반대편 논증들을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 혹은 <상호-주관적> 진리 산출에 관심을 둘 경우, 반대편을 위해 그들 논증을 고칠 것이다. <반대편의 이해하기를 목표로 성공한다는 의미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마주하는 상대들과 싸울 뿐만 아니라 이미 효력을 상실한 지나간 것들에서 구성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것들과도 싸워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최고의 노고가 들어간다.]

 

 

이상이 의미하는 바란?

 

이제 불일치 형식들을 분류하는 방식을 갖게 되었다. 어떤 이점이 있는가? 불일치 위계가 우리한테 주는 것은 승자를 고르는 방식이 아니다. 불일치 위계 수준들은 진술에 대한, 옳고 그르냐가 아닌, 단지 그 형식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DH6 응대도 여전히 전적으로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불일치 위계 수준들이 응대 설득의 질적 상태에 관한 하한선을 설정하지는 않지만 상한선을 설정하기는 한다. DH6의 응대는 설득력이 있을 수 있지만, DH2나 더 낮은 반응은 언제나 그렇듯 설득력이 없다.

 

불일치 형식들의 분류가 주는 가장 분명한 이득은 자신들이 읽은 것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점이다. 특히, 지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기만적인 논증들을 꿰뚫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읽기 쉽게, 분명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말하는, , 달변의 능력을 갖춘 화자나 필자는 단지 강력한 단어들만을 써서도 상대편을 논파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사실, 이것은 필시 선동가를 정의하는 특징이다. 불일치의 상이한 형식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우리는 비판적 독자들한테 그러한 풍선들을 터트리는 핀 하나를 주고자 한 것이다.

 

그와 같이 붙인 이름들은 필자들한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최고의 지적 기만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 뭔가의 논조에 반대해 논하고 있는 이는 자신이 그 뭔가를 정말 말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 수 있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불일치 위계에 맞추어 보면서 반대논증이나 반박으로 응대 수준을 높이려는 맘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일치를 잘 다루는 것의 최대 이득은 더 나은 대화들을 행할 것이라는 점이 아니라, 자신들을 더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대화들을 살펴볼 경우, DH6<7>으로 상승보다는 DH1으로 하강하는 훨씬 더 많은 저열함을 발견할 것이다. 실제로 어떤 지점에 설 때 비열해질 필요가 없다. 사실, 그건 당신이 원하는 게 아니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비열해지는 것은 그 말길을 막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불일치 위계를 상승시켜 사람들이 덜 비열해질 경우, 그것으로 그들 대다수는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정말이지 비열함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기에 그러는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 위계의 이점으로는 불일치들에 재빨리 꼬리표를 붙일 수 있게 하며, 이로써 읽고 응대하는 걸 방해하는 것을 골라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거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리한다면 인터넷 불일치의 질적 상태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원고를 읽어 준 Trevor BlackwellJessica Livingston한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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