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혹은 의식이란 무엇일까?
2014.04.14 18:44
넋, 혹은 의식이란 무엇일까?
내가 ‘의식(意識)이란 무엇일까?’ 하고 묻지 않고 ‘넋’이라는 학구적이지 않은 좀 생뚱맞는 일상어를 선택한 것은,단어, ‘의식’에 대해 미리 갖고 있는 갖가지 다양한 의미들의 갖가지 사용례, 그에 따른 혼란, 모호함 등을 피하고자 하는 일차적 목적을 갖고 있다. 단어 ‘의식’의 어원은 ‘알기에 동반하기(conscious)’다. 말인즉, 단순한 대상이 아닌 알기 작용, 스킴, 시스템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주한다는 것은 알기 자체에 붙박이 된 상태가 아니라 알기 작용에 관여된 바들을 고려 감안할 수 있을 정도로 알기와 일정 거리를 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는 ‘의식’에 대해 달리 정의하는 바들이 많이 있겠으나, 구성론과 관련하여, 합리적 구성 과정에서 한정하여 ‘의식’을 이러한 의미로, 즉, ‘알아차리기’로서 제한하여 살펴보고자, ‘넋’이란 단어로 질문을 시작한 것이다; 일단 ‘넋’을 발견적 허구로 보자는 것이다.
우리말 ‘넋’의 일상 용례들로는, ‘넋을 놓고 보다’: 주변 상황을 의식하지 않고 그것에 몰입된 경우, ‘넋 빠진 놈’ 혹은 ‘넋을 잃고...’: 특정 조작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경우, ‘넋대로’: 특정한 이가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넋이 담기다’ 혹은 ‘넋을 기리다/달래다’: 넋이 특정 조작이나 그것의 물화된 상태에 머문다고 여기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그것을 위로하는 경우, 등등이 있다. 이러한 용례들에서 사용되는 ‘넋'들은 주로 관찰자 관점에서 기술한 것들이다. 관찰자 관점에서 '넋'의 문장내 기능은, 내관(內觀)적 혹은 반성적 기술(記述)에서 '나' 혹은 '너'에 상응하는 것이다. 요컨데, 타자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넋을 관찰자는 볼 수 가 없음에도 이리 일상어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넋의 사용례 또한 발견적 허구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나는 ‘이, 그, 그리고 저’란 지시 대명사를 넋과 관련해서 사용할 것이다. 넋에 대한 의문을 표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개념 구성에 있어 이 세 지시가 고려될 때만 그 개념의 자체 정의, 그 유용성, 그리고 반성적 여지를 갖추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넋과 관련해서만, 그리고 넋 또한 이 대별되는 세 지시 요소들에 따라 그 기능을 대별할 의도로 ‘이,그,저’ 지시를 사용하고자 한다.
넋은 조작과 일체가 되어 누워 있는 상태 하나(ㄴ), 일정 조작 또는 현상이나 대상을 놓고 다른 조작 또는 현상이나 대상을 비교하는 하나에 붙어 서서 다른 하나를 주시하거나 양다리를 걸치고 서 있는 상태 하나(ㄱ), 그리고 앞의 두 경우에서 일탈함으로써 이제까지 상태를 일별할 수 있는 독립된 상태(ㅅ)로 대별될 수 있다.
주어진 전제로서, 넋이 작용하고 있는 마음은 닫힌 체계로서(ㅓ) 넋은 그 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한 그 체계를 벗어날 수 없다; 넋이 체계의 구성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는 한 말이다. 이 넋이 더 이상 구성 요소, 구성의 작용자로서 기능하지 않는 상태가 아닐 때, 즉 체계와 무관해진 상태에서, 그것을 계속 넋이라 부르는 것은 이미 합리적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합리적 영역을 벗어난 넋이란 무엇일까?
최초 구별 또는 알아차리는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는 넋은 그 자체로 홀로 있을 수 없다. 최초 구별이란 타고난 스킴 속에서 스킴에 적합한 현상을 포획하려는 넋, 구별자의 최초 인지 행위이자 창조 행위다. 그 구별 구성에 필요한 것들 또한 ‘이,그,저’ 세 지시로 가리켜 진 것들이다: 이것이랄 수 있는 구별자, 나중에 이성이라고도 불리는 주의가 그 하나요, 그것이랄 수 있는, 혹자는 전경이라고 말하는 구별해낸 것이 또 하나요, 저것이랄 수 있는 혹자가 배경 또는 후경이라 말하는 구별되고 남은 것이 또 다른 하나다.
통상, 구별자 혹은 경험자에게 ‘이’는 직접적, 확인 가능한, 통제해야 할, 그래서 또한 책임져야 할 무엇이기도 하다. 반면, ‘그’는 ‘이’의 작용이 가해지는 그래서 구성되어 나타나는 그렇지만 반드시 ‘이’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는 그래서 이해되어야 하고 가끔씩은 추측하기도 해야 하는 무엇이다. 마지막으로, ‘저’는 ‘그’의 생성에 관여되는 한편이기도 하지만 ‘그’에 주의 초점을 두는 한 주의한테는 그 순간 무시되는 무엇이다. 주의가 ‘저’에 초점을 두는 순간, 주의는 이전 그에 머물던 수준 또는 층위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때, ‘저’란 주의한테 대상이 아닌 그저 주의의 지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존재만을 다루는 논리에서, '저'는 ‘그'의 그림자지만, 있다와 없다를 다루는 논리에서, '저'는 '그'와 대등한 지위를 갖는다.
알아차림이란 인지과정에서 나타나는 매우 일반적 현상이다. 비교&판단, 동화&조정에 주로 개입하는 알아보기와는 달리, 알아차리기는 반성과 창조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넋의 기능이다. 유기체가 변화된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전 자신의 상황 인식 틀이나 도구에 입각해서 그 변화의 차이를 동화 혹은 조정으로 처리할 때, 그 유기체는 이내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스펜서의 형식의 법칙들의 공리 생성의 기초이기도 한 최초 구별이라는 것은 경험적 상황이 아닌 가설적 상황이다.반면, 알아차리는 순간이란 경험적 순간이다. 실상, 이때도 넋은 조작&과정에서 분리되는 짧은 순간을 제외하면 홀로가 아니다. 그 짧은 순간에만 넋은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확립시킬 기회를 갖는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구별 공간의 이면인 무표 공간에 지향을 둠으로써 의지할 바를 갖거나, 알아차리는 대상에 지향을 둠으로써 그 존재를 유지 버텨낸다; 앞서 무표 공간에 지향을 두는 것은, 지각장에서, 현상 구별하기와 관련해서 넋이 현상 구별 원천으로서 지각장의 혼돈 상태에 맞서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로, 기대 또는 목표 달성하기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그' 쪽이라고 설정한 공간에서 발견하고자 지각장 주의를 집중하고 특정 현상을 찾아 원하는 바에 동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때, 넋은 원하는 바에 기대서, 현상 공간을 뒤적거리며 헤매다 원하는 지각물을 얻을 수도 있다. 지각장 혹은 현상-공간을 넋이 지각 패턴에 의존치 않고 바로 맞설 수 있는 경우는 동화가 아닌 조정이 나타나는 불일치의 특정 순간일 뿐이다. 그 순간의 그 공간은 말이 현상이지 우리가 보는 통상의 지각 현상 공간이 아닌, 문학적 표현으로는 '혼돈'의, 또는 실재론적 철학이 진리의 실마리라도 발견코자 하는, 말인즉, 'ontic'한 공간이다. 이 짧은 순간 또한 넋이 어디에도 의존치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있는 때다.
이상의 경우, 우리는 넋이 자체로 독립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능동적 작용자로서 기능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지향이나 대상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그 넋이란 자신을 지속적 존재로 유지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합리적 영역에서는 그것을 다루는 데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적 영역에서는 주의(注意),예스런 용어로는 이성(理性)으로 이를 대신해서 다루어 왔다. 하지만, 지향과 대상을 제거한 넋이란, 앞서 말한 바처럼, 분명 경험적이며 합리적 구성 과정에서, 전제되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덧붙여, 넋을 합리적 한계를 가로지르면서까지 경험적으로 확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신비적 경험과 지혜를 다루고자 하는 시와 문학을 우리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넋에 대해 말하면서, 넋의 존재라는 측면에는 우리가 경험이 아닌 가정한 또 다른 면이 있다. 그것은 조작자로서 기능하는 넋이다. 일정한 조작이 행해지고 있는 경우, 분명 그 조작에는 행위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조작자를 우리는 존재로서 보거나 분리해 낼 수 있지 않다. 분석이나 설명이 아닌 경험으로서, 특정 하기 그 자체가 진행되다 멈추는 순간 '허구'로서 가정된 그 존재는 조작이 멈추는 것과 함께 사라져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우리가 관찰할 경우, 우리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일정한 에너지 수준 밖에 없다.
조작 자체, 행위 자체가 진행될 때, 조작자 혹은 행위자로서 우리는 조작이나 행위에서, 조작자, 행위자를 구별해 낼 수 없다. 말인즉, '발견적 허구'로서 넋인 조작자, 행위자는 그 조작, 행위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붙박이 신세다.이때, 넋은 조작 또는 행위와 일체가 되어 '것(entity)'으로서 지위를 잃는다. 이때의 가설적 그 넋을 상정하는 경우,우리는 그것을 존재라기 보다는 일정한 에너지, 조작이나 행위에 구속된 에너지로 볼 수도 있다; 관찰자 관점에서,작동하는 기계에 에너지 공급을 끊으면 작동을 정지하는 것처럼; A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 B의 경우, A의 행위 에이젼트는, 보통, B에 기댄, 즉, B를 전제로 한 조작자로 정의된다.
상상컨데, 닫혀진 구성된 이 마음에서 자체로 독립적으로 확립될 수 있는, 지향이나 대상이 제거된 넋을 인정한다 한들, 그 마음에서도 같은 지 어쩐 지는 알 수 없으니 다만 그러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확인하고 실험할 수도 없는, 없을 저 무엇-마음에서는 구속에서 풀린 자유로운 에너지 그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 인간 세대들이 이리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여긴다.
요컨데, 넋은 합리적으로 다룰 수 있어 세 가지 정도로 대별할 수 있고, 합리적 영역에 속할 수 없는 넋의 측면은 그것을 존재로 확립하려는 순간 합리성이 부서지기에 그래서 시와 문학에 존립 정당성을 부여하는 신비로운 것이기도 하다. 넋은 합리적 구성과 관련되어 설명될 수 있지만, 그 자체를 경험하기 전이든 후든, 그 자체로 존재를 전제 혹은 확립하고자 하는 것은 떠도는 유령을 붙잡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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