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선사 행장

2020.08.16 23:38

나공 조회 수:16



趙州真際禪師行狀

 조주진제선사행장



  即南泉門人也俗姓郝氏本曹州郝鄉人也諱從鎮府有塔記

      사즉남전문인야     속성학씨    본조주학향인야    휘종심   진부유탑기

:「師得七百甲子歟值武王微沐避地岨崍木食草衣僧儀不

운      사득칠백갑자여     치무왕미목    피지저래    목식초의    승의불

。」師初隨本師行 到南泉本師先人事了師方乃人事南泉在方

역       사초수본사행각  도남전    본사선인사료    사방내인사    남전재방

丈內臥次見師來參便問:「近離什麼處?」師云:「瑞像院。」南泉

장내와차    견사래참    편문       근리심마처       사운      서상원       남전

:「還見瑞像?」師云:「瑞像即不見即見臥如來。」南泉乃起

운       환견서상마       사운       서상즉불견    즉견와여래       남전내기

:「你是有主沙彌無主沙彌?」師對云:「有主沙彌。」泉云:「

문       니시유주사미    무주사미       사대운       유주사미       전운      나

個是你主?」師云:「孟春猶寒伏惟和尚尊體起居萬福。」 泉乃喚維

개시니주       사운       맹춘유한    복유화상존체기거만복         전내환유

那云:「此沙彌別處安排。」

나운       차사미별처안배


스님은 남전스님(748-835) 문인이다. 속성은 학씨, 본시 조주 학향 사람으로 법명은 종심이다. 진부에 있는 탑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스님께서는 칠백갑자(778-897)나 살았다! 무종의 폐불법란(842-845)을 피해 저래산에서 나무 열매를 먹고 풀옷을 입으면서도 승려로서 본보기를 지켰다.” 스님은 은사스님을 따라 행각하다 남전스님께 이르렀다. 은사스님이 인사를 마친 후 스님이 인사를 드렸는데, 그때 남전스님은 방장에 누워 있다 들어오는 스님을 보고 바로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에서 왔습니다.” 

“서상(상서로운 모습)은 보았느냐?” 

“서상은 못 보았지만 누운 여래는 보입니다.”

남전스님은 이에 벌떡 일어나 물었다.

“주인 있는 사미인가, 주인 없는 사미인가?”

“주인 있는 사미입니다.”

“네 주인은 누구냐?”

“초봄이라 여전히 차갑습니다. 존체를 살피시어 만복을 누리십시오.”

남전스님은 이에 유나(維那)를 불러 말씀하셨다.

“이 사미에게 거할 곳을 마련해 주거라.”

<無賓主話>



  師受戒後聞受業師在曹州西住護國院乃歸院省覲到後本師

       사수계후    문수업사재조주서    주호국원    내귀원성근    도후   본사

郝氏云:「君家之子遊方已回。」其家親屬忻懌不已祇候來日

령학씨운       군가지자    유방이회       기가친속흔역불이     기후래일   함

往觀焉師聞之乃云:「俗塵愛網無有了期已辭出家不願再

주관언    사문지     내운      속진애망    무유료기    이사출가    불원재

。」乃於是夜結束前邁其後自攜瓶錫遍歷諸方常自謂曰:「七歲

견       내어시야결속전매    기후자휴병석    편력제방    상자위왈       칠세

童兒勝我者即問伊百歲老翁不及我者即教他。」年至八十

동아승아자    아즉문이    백세노옹불급아자    아즉교타       년지팔십    방

住趙州城東觀音院去石橋十里已來住持枯槁志效古人僧堂無前後

주조주성동관음원     거석교십리    이래주지고고    지효고인    승당무전후

旋營齋食繩床一腳折以燒斷薪用繩繫之每有別制新者師不

가   선영제식    승상일각절    이소단신용승계지     매유별제신자    사불  

許也住持四十年來未嘗齎一封書告其檀越

허야    주지사십년래    미상재일봉서고기단월


스님은 구족계를 받은 후, 은사스님이 조주 서쪽 호국원에 머문다는 말에 바로 돌아가 은사스님을 찾아뵈었다. 스님이 도착하자 은사스님은 사람을 보내 학씨 일가에 알렸다: “귀댁의 자제가 행각길에서 돌아왔습니다.” 학씨 친족들은 몹시 기뻐하며 다음날 함께 보러가기로 하였다. 스님은 이를 듣고 말하기를, “속세 티끌과 애정의 그물은 다할 날이 없구다. 이미 출가하였는데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하고는, 그날 밤 바로 짐을 챙겨 행각에 나섰다. 그 후 물병과 석장을 지니고 제방을 편력하며  항상 자신한테 이르기를, “일곱 살 먹은 아이라도 나보다 나으면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하면 가르치리라.” 스님께서는 80이 되어서야 조주성 동쪽 돌다리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관음원에 머물렀다. 그때부터 주지살이를 하였는데, 궁한 살림에도 옛사람의 뜻을 본받아 승당에는 전가나 후가도 없었고, 겨우 공양을 마련해 먹을 정도였다. 승상의 부러진 한쪽 다리 대신 타다남은 부지깽이를 노끈으로 묶었두었는데, 누가 새로 만들려 하면 그때마다 허락치 않았다. 40년 주지하는 동안에 편지 한 통을 시주에게 보낸 일이 없었다.

<覺子: 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作, 不受後有>:아생이 이미 다했고, 범행은 이미 섰고, 할바는 이미 다했으니, 이제 이럴 일은 더는 없다.



  因有南方僧來問雪峰古澗寒泉時如何?」雪峰云:「瞪目不

       인유남방승래   거    문설봉    고간한천시여하       설봉운       징목불

見底。」學云:「飲者如何?」峰云:「不從口入。」師聞之曰:「不從

견저       학운      음자여하        설봉      부종구입       사문지왈       부종

口入從鼻孔裏入。」其僧卻問師:「古澗寒泉時如何?」師云:「。」

구입    종비공리입       기승각문사       고간한천시여하       사운       고

學云:「飲者如何?」師云:「。」雪峰聞師此語贊云古佛

학운       음자여하       사운      사       설봉문사차어    창운    고불

古佛!」雪峰後因此不答話矣

고불       설봉후인차부답화의


한번은 남방에서 한 스님이 와서 설봉(822-908)스님과 대화를 거론: 

학인: ‘옛날 골짜기 차디찬 샘물은 어떠합니까?’

설봉: ‘똑바로 보아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학인: ‘마시면 어떠합니까?’

설봉: ‘입으로는 마시지 않는다.’”

스님이 듣고 말했다:

“입으로 마시지 않으면 콧구멍으로 들이키겠군.”

학인: “옛날 골짜기 차디찬 샘물은 어떠합니까?’”

스님: “쓰다.”

학인: “마시면 어떠합니까?”

스님: “죽는다.”

설봉스님은 나중에 스님의 이 말을 듣고 찬탄하였다.

“고불이로다 고불!”

설봉스님은 이후 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九景覺示: 眞人生處, 滅持之處, 良知靈通, 三界歸原.>



  厥後因河北燕王領兵收鎮府既到界上有觀氣象者奏曰趙州有聖

       궐후인하북연왕령병수진부    기도계상     유관기상자주왈    조주유성

人所居戰必不勝。」燕趙二王因展筵會俱息交鋒乃問:「趙之金

인소거    전필불승       연조이왕    인전연회    구식교봉    내문      조지금

上士何人?」 或曰:「有講華嚴經大師節行孤邈若歲大旱咸命

지    상사하인        혹왈      유강화엄경대사    절행고막    약세대한    함명

往臺山祈禱大師未回甘澤如瀉。」乃曰:「恐未盡善。」或云:「

왕대산기도    대사미회    감택여사       내왈       공미진선       혹왈      차

去一百二十里有趙州觀音院有禪師年臘高邈道眼明白。」僉曰

거일백이십리     유조주관음원    유선사   년랍고막    도안명백       첨왈

此可應兆乎!」二王稅駕觀焉既屆院內師乃端坐不起燕王遂問

   차가응조호       이왕세가관원    기계원내    사내단좌불기     연왕수문

:「人王尊耶法王尊耶?」師云:「若在人王人王中尊若在法

왈       인왕존야    법왕존야       사운      약재인왕    인왕중존    약재법

法王中尊。」燕王唯然矣師良久中間問:「阿那個是鎮府大王。」

왕    법왕중존       연왕유연의    사량구중간문       아나개시진부대왕

趙王應諾:「弟子。」(緣趙州屬鎮府以表知重之禮。)師云:「老僧

조왕응낙       제자          연조주속진부     이표지중지례       사운      노승

濫在山河不及趨面。」須臾左右請師為大王說法師云:「大王左右

람재산하    불급추면       수유    좌우청사위대왕설법    사운       대왕좌우

教老僧說法。」乃約令左右退師身畔時有沙彌文遠高聲云

다    쟁교로승설법       내약령좌우퇴    사신반시유사미문원     고성운

啟大王不是者個左右。」大王乃問:「是什麼左右?「對曰:「大王

   계대왕    불시자개좌우       대왕내문       시십마좌우       대왈       대왕

尊諱多尚所以不敢說法。」燕王乃云:「請禪師去諱說法。」師云

존휘다    화상소이불감설법       연왕내운        청선사거휘설법       사운

故知大王曩劫眷屬俱是冤家我佛世尊一稱名號罪滅福生。」

   고지대왕낭겁권속     구시원가    아불세존    일칭명호   죄멸복생       대

王先祖才有人觸著名字便生嗔怒。「師慈悲非倦說法多時二王稽

왕선조    재유인촉저명자    갱생진노       사자비비권    설법다시    이왕게

首讚歎珍敬無盡

수찬탄    진경무진


이후 한번은 하북 연왕이 진부 점령을 위해 군사를 일으켜 경계에 이르렀을 때 기상관이 말하기를, “조주는 성인이 거하는 곳이라 싸우면 필패입니다”

연왕과 조왕은 연회를 베풀고 싸우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묻기를, “조나라의 훌륭한 분이 누구인가?” 어떤 이가 말하길, “화엄경을 설하는 대사가 있사온데, 절개와 수행이 훌륭하십니다. 만약 그 해에 큰 가뭄이 들어 모두 오대산에 가서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면, 대사께서 돌아오기도 전에 감로 같은 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이에 연왕은 말하길, “그다지 훌륭한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이가 말하길, “여기서 120리 떨어진 조주 관음원에  선사 한 분이 계시는데 나이와 승랍이 높고 도를 보는 안목이 밝습니다.” 모두가 말하길,“정말 딱맞는 말이요!” 두 왕이 수레를 풀고 원내에 이미 들었는데도 , 스님은 바로 앉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셨다. 연왕이 묻기를, “인왕이 높은가, 법왕이 높은가?” 스님 왈, “인왕 중에는 인왕이 높고, 법왕 중에는 법왕이 높지요.” 연왕이 수긍하였다. 스님이 한참 있다 묻기를, “어느 분이 진부의 대왕입니까?” 조왕 왈, “저올시다” (조주는 진부에 속하기에 본보기로 예의 중함을 시연). 스님 왈, “노승은 산야에서 남루하게 지내다 보니, 미처 찾아뵙지도 못했습니다.” 잠시 후 좌우에서 대왕들을 위하여 설법을 청하니 스님 왈, “대왕들께서는 좌우가  많은데 어찌 노승더러 설법하라 하십니까?” 이에 좌우를 물리니, 문원이라는 사미가 큰소리로, “대왕께 아룁니다. 그 좌우가 아닙니다.” 그러자 대왕이 “어떤 좌우를 말하는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대왕께는 존호가 많아서 스님께서 그 때문에 설법을 못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연왕(燕王)이 “선사께서는 개의치 마시고 설법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스님이 말씀하시길, “예전에 강탈했던 권속들을 보자면, 모두 원수가 됩니다. 우리 부처님 세존의 명호는 한 번만 불러도 죄가 소멸하고 복이 생기는데, 대왕의 선조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기만 해도 금방 성을 냅니다.” 스님은 쉼없이 자비로 설법하셨다. 두 왕은 머리숙여 찬탄하며 극진한 존경을 표했다.

<擇滅1> : 慈悲 = 無着之心直指人心




  來日將回燕王下先鋒使聞師不起凌晨入院責師傲亢君侯

      내일장회    연왕하선봉사    문사불기    릉신입원    책사오항군후    사

聞之乃出迎接先鋒乃問曰:「昨日見二王來不起今日見某甲來

문지    내출영접   선봉내문왈        작일견이왕내불기    금일견모갑래    인

何起接?」師云: 「待都衙得似大王老僧亦不起接。」先鋒聆師此語

하기접       사운        대도아득사대왕     노승역불기접       선봉령사차어

再三拜而去尋後趙王發使取師供養既屆城門闔城威儀迎之入

재삼배이거    심후    조왕발사   취사공양    기계성문    합성위의    영지입

師才下寶輦王乃設拜請師上殿正位而坐師良久以手斫額云

내    사재하보련    왕내설배   청사상전    정위이좌    사량구이수작액운

階下立者是何官長?」左右云:「是諸院尊宿並大師大德。」師云

   계하립자시하관장        좌우운       시제원존숙병대사    대덕       사운

他各是一方化主若在階下老僧亦起。」王乃命上殿

    타각시일방화주    약재계하    노승역기       왕내명상전


다음 날 두 왕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연왕 휘하의 선봉장이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임금에게 오만하게 대하였음을 힐책하기 위하여 새벽에 원에 들었다. 스님은 이 말을 듣고 나가 영접하니 선봉장이 물었다: “어제는 두 대왕이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더니, 오늘은 어찌 제가 오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서 맞으십니까?” 스님 왈, “그대가 대왕만 같다면 노승도 일어나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오.” 선봉장은 이 말을 듣고 스님한테 두 번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뒤 조왕은 사신을 보내 스님을 모시고 공양 올리고자 하였다. 스님이 성문에 다다르자 온 성안이 모두 예의를 갖추고 영접하였다. 스님이 성안에 들어와 보배수레에서 내리자, 왕은 절을 올리고 스님한테 전각 가운데 자리에 앉으라 청하였다. 스님은 한동안 가만 있다가 손을 이마에 대고 내려다 보며 말하였다: “계단 아래 서 있는 이들은 어느 관청의 장들입니까?” 좌우에서 말하길, “여러 절의 노스님들과 대사, 대덕들입니다.” 스님 왈, “저 분들도 각기 한 지방을 맡아 가르침을 펴는 분들인데, 그 분들이 계단 아래 서 있다면 노승도 일어나겠습니다.” 그러자 왕은 모두 전각 위로 오르도록 하였다.

<擇滅2> : 無我之處 無高低




  是日齋筵將罷僧官排定從上至下一人一問一人問佛法

       시일제연장파    승관배정    종상지하   일인일문    일인문불법    사기

望見乃問:「作什?」:「問佛法。」師云:「這裏已坐卻老僧

망견    내문      작십마       운       문불법       사운      저리이좌각노승

那裏問什麼法二尊不並化。」(此乃語之詞也王乃令止

나리문십마법     이존불병화          차내어지사야    왕내령지


이 날 제연이 끝나려 할 때, 승려든 관원이든 각 위계의 위에서 아래까지 한 사람씩 그리고 하나씩 질문하도록 했다. 한 사람이 불법을 묻자 스님은 멀리 바라보았다. 곧바로 묻기를, “무어라 했는가?” “불법을 물었습니다.”라 답하니, 스님 왈, “여기 바로 노승이 앉아 있었다, 무슨 법을 어디서 찾는건가? 둘을 동시에 높이는 것은 불가하다.” 하니, (이는 요청에 대한 깨침이라) 왕은 바로 멈추도록 했다.

<擇滅3>: 佛法非語, 佛法獨尊.



  其時國后與王俱在左右侍立國后云:「請禪師為大王摩頂受記。」

       기시국후여왕구재좌우시립     국후운       청선사위대왕마정수기

師以手摩大王頂云:「願大王與老僧齊年。」是時迎師權在近院駐泊

사이수마대왕정운        원대왕여노승제년        시시영사권재근원주박    획

時選地建造禪宮師聞之令人謂王曰:「若動著一莖草老僧卻歸

시선지    건조선궁   사문지    령인위왕왈        약동저일경초    로승각귀

趙州。」其時竇行軍願捨果園一所直一萬五千貫為真際禪院亦云

조주       기시두행군원사과원일소     직일만오천관    호위진제선원    역운

竇家園也師入院後眾雲臻是時趙王禮奉燕王從幽州奏到命服

두가원야    사입원후    해중운진    시시조왕례봉    연왕종유주주도명복

鎮府具威儀迎接師堅讓不受左右舁箱至師面前云:「大王為禪師佛法

진부구위의영접     사견양불수    좌우여상지사면전운        대왕위선사불법

堅請師著此衣。」師云:「老僧為佛法故所以不著此衣。」左右

고    견청사저차의       사운       노승위불법고    소이부저차의       좌우

:「且看大王面。」師云:「又干俗官什麼事!」王乃躬自取衣掛身

운       차간대왕면       사운       우간속관십마사        왕내궁자취의괘신

禮賀再三師惟知應諾而已

상   례하재삼     사유지응낙이이


그때 왕비가 왕과 스님을 좌우시립하다 말하길, “선사, 대왕을 위해 마정수기를 청하나이다.” 스님은 대왕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왈: “노승만큼 장수하소서.” 이즈음 근처 선원에서 스님은 맞아 잠시 머물러 묵고 있을 때, 날짜와 장소를 택해 선궁을 짓도록 한다는 말을 듣고 스님은 대왕에게 알리기를, “풀 한 포기라도 건드리면 노승은 다시 조주로 돌아갈 것이오”. 그즈음 두행군이라는 사람이 일만 오천관이나 하는 과수원 하나를 기부했다. 진제선원 또는 두가원이라 불렸다. 스님이 선원에 들자 엄청난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즈음 연왕이 유주에 명해 지은 예복을 조왕은 진부에서 위의를 갖추어 영접하도록 예의를 다했다. 스님이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으니, 곁에 사람들이 상자를 스님 앞에 놓으며 말하길, “대왕은 선사의 불법을 위하는 것이니 부디 입으시기를 청하나이다.” 하니, 스님 왈, “불법을 위하기 때문에 이 옷을 입지 않는 것이요.” 좌우 왈, “부디 대왕의 체면을 헤아려 주시십오.” 스님 왈, “속관한테 또 이래라 저래라하오!” 이내 왕이 몸소 옷을 들어 걸쳐드리고 삼배의 예를 갖추었지만 스님은 단지 받기만 하였다..

<擇滅4>: 法身示唯用, 裝體即乖

 



  師住趙州二年將謝世時謂弟子曰:「吾去世之後焚燒了不用

       사주조주이년    장사세시    청제자왈       오거세지후   분소료    불용

淨淘舍利宗師弟子不同浮俗且身是幻舍利何生斯不可也。」令小

정도사리    종사제사부동부속     차신시환   사리하생    사불가야       령소

師送拂子一枝與趙王傳語云:「此是老僧一生用不盡底。」師於戊午

사송불자일지여조왕     전어운       차시노승일생용부진저        사어무오

十一月十日 端坐而終于時竇家園道俗車馬數萬餘人哀聲振動原

세십일월십일   단좌이종    우시두가원    도속차마수만여인     애성진동원

趙王于時盡送終之禮感歎之泣無異金棺匿彩於俱屍矣莫不高營

야    조왕우시진송종지례    감탄지읍    무이금관닉채어구시의     막불고영 

雁塔豎豐碑諡號曰真際禪師光祖之塔後唐保大十一年孟夏月旬有

안탑   특수풍비     시호왈진제선사광조지탑     후당보대십일년맹하월순유

三日有學者咨問東都東院惠通禪師趙州先人行化厥由作禮而退

삼일     유학자자문동도동원혜통선사     조주선인행화궐유     작례이퇴

乃授筆錄之

내수필록지


스님이 조주에서 2년 머무를 때, 새해 감사를 행할 때 제자들에게 청하기를:

“내 세상을 뜨고 나면 태운 후 사리를 거두지 말라. 종사의 제자는 세속 사람과는 다르다. 더구나 몸이란 허깨비인데, 사리따위를 뭐하러 만들겠는가. 가당치 않다.” 스님은 불자 한 자루를 조왕한테 보내며, “이것은 노승이 평생 쓰고도 다 쓰지 못한 것입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스님은 무오년 11월 10일 단정히 앉아 임종했다. 그때 두가원에서는 두씨네 동산에는 승속을 가리지 않고 수 만의 차마와 사람들이 모여  슬피우는 소리로 천지가 진동했다. 조왕이  송종지례를 다하며 한탄스레 울었을 때는 쿠시나가라에서 황금관이 빛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안탑을 높이 짓고 큰 비를 특별히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제선사광조지탑이라 이름지었다. 후당 보대 11년(953) 4월 13일, 한 학인이 동도동원의 혜통선사께 조주선사의 행화궐유[행적과 교화, 그리고 그 연유(緣由)]를 자문하였다. 예를 갖추고 나와 붓을 들어 기록하였다.

<擇滅5>: 法身亦是空 



밭매는 이한테,

“공이 뭔디?” 물으니,

“호민디” 라고 답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 조주선사 어록 1-18 [1] 나공 2020.08.31 21
» 조주선사 행장 나공 2020.08.16 16

회원:
5
새 글:
0
등록일:
2014.06.19

오늘:
57
어제:
80
전체:
119,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