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에 속하는 또는 관련된 책과 논문들
How rea lis real?
2011.03.13 01:41

1-3. 혼동의 이득들

조회 수 194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혼동과 관련해서 좋은 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들이 웃기 시작하는 경우를 보자.

이것이 나한테 혼동스런 까닭은,  그 사람들이

내가 보는 바와는 전혀 다른 상황 현실을 보고 있거나,

내가 갖고 있지 않는 어떤 정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즉각적 반응은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뒤에 누가 있는지 돌아보는 것부터 그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여기는 것까지;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거울을 보는 것부터 직접 물어보는 것까지.


충격을 받은 후, 혼동으로 촉발되는 것은

즉각적 의미 탐색이거나 또는 불확실한 상황에 내재한 불안을 축소시키는 명령이다.

그 결과, 주의력은 비상히 증가하고, 그 주의력은 흔쾌히 인과적 연결을 가정할 마음과 결합된다:

그러한 연결은 그 상황에서 아주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탐색이 확장되어 그와 같은 세세한 또는 별 가능성 없는 것들에까지 이르러,

더 심한 혼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반면, 마찬가지로,

새롭고 창조적인 현실-개념-형성 방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헷갈리고 있는 사람은, 혼동의 안개 속에서 건진

언뜻 보기에 믿을만한 증거 조각에 매달려 결론들로 쉬이 비약한다.*

이 또한 도움되는 이점으로 뒤바뀔 수 있다.

유명한 최면치료사 밀튼 H. 에릭슨 박사는 이를

혼동 기법이라 불린

정교한 치료적 개입(介入)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그 발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 …

한 남자가 건물 모퉁이를 돌아 달려 나오다

바람에 버티고 서 있는 나와 심하게 부딪혔다.

나는 그가 자세를 잡고 말을 걸기 전에 내 시계의 시간을 확인하고,

정중하게, 그가 시간을 물었봤던 양, 말했다;

실제로는 오후 4시 가까이 되었지만,

“It’s exactly ten minutes of two(정확히 2시 10분(방향)입니다)”.

그리고 반 블록 정도 걷다다 돌아보았을 때 그는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그는 분명 내 말에 어리둥절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서 있었다. [39]

 

---------------------------------------------------------------------------------------------------------------------------------------------------------------------------

*이는 자주 보고된 다음 사실을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수도 있다:

최초의 성적 흥분과 절정이라는 정서적 혼란 상태는 그 순간 우연히 함께 나타난 

전혀 관계 없는 요소에 그 상태를 매달아 연결할 수 있다; 이는

기이한 성적 집착과 행동 양식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상대가 귀를 잡아당길 때만 발기가 가능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것의 유래는

그가 최초 자위에 성공할 때 선생한테 붙잡혀 귀가 잡아당겨졌다는 사실에 있다.

이태리 사람들 왈, Se non è vero, è ben trovato(그것이, 참이 아니라면멋지게 발명된 것이다).

영화 카사노바’ 70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을 조롱하고 있다:

마르셀로 매스트로이아니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또는

거의 시간이 없을 때만 성교가 가능한 영웅을 연기한다.

불행히도, 운명은 가진 것이라곤 시간 밖에 없는 아름다운 여인들과

완벽히 안전한 상태로 계속해서 만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발기불능이 되든가 아니면 상황을 위험하거나 긴급하게 만들기 위해

법석을 떨며 극단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장면을 우디 알렌의 영화, Eerything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Sex but Were Afraid to Ask

에서도 볼 수 있다.

-----------------------------------------------------------------------------------------------------------------

 

에릭슨은, 모호하며 다의적이고 어리둥절한 진술들을 써서 유사한 혼동을 창조함으로써, 

최면상태 환자가 처음 받은 상세한, 이해 가능한 정보 조각에

특별한 중요성과 타당성을 아주 쉽게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신치료학은 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바꾸는 예술이기에,

혼동 기법은 매우 강력한 끼어들기다. (말할 것도 없이,

비윤리적인 사람이 사용하면, 매우 부정적 결말들을 낳을 수 있다.) 

 
달리 말해, 혼동은 우리 감각을 날카롭게 주의를 섬세하게 만든다.

특별한 경우, 이를테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면,

보통 때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처신하게 된다.

“생각함 없이”, "순식간에", 목숨을 구하는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소 예외적인 조건들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혼동에 대한 반응으로서 일어난다.

그런 일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것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이유로 거의 얼이 빠졌을 때다.

얼빠짐(absent-mindedness)은 혼동과 많은 긍정적 효과들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급히 자켓을 벗어 의자 쪽으로 대충 던진다; 놀랍게도 의자 등받이에 말끔히 걸쳐진다.

그 묘기를 반복해서 시도하는 경우 실패한다 – 그리고 막연한 느낌을 갖는다;

그 실패의 원인은 어떻든 그것을 의식적으로 해낼려고 했던 자신이 아닐까?

이 주제에 대한 방대한 그리고 흥미로운 문헌들, 특히, 극동 지역의 텍스트들이 있다.

헤리겔의 작고 아름다운 책 Zen in the Art of Archery[67]에서 기술된,

도가의 무위(고의적 태만) 개념과 마음을 내려두고 느끼라라는 선불교의 가르침들은,

이러한 것들의 일부다.

  
마음의 어떤 “고등” 권능들이 수반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일정 정도 의식적으로 주의를 주지 않은 상태는 상호작용이 <인간들 사이든, 또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든>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들에 내재한 무수한 미세한, 비언어적 실마리들을 더욱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동물들은, 영리한 한스 이야기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정말이지 아주 미세한 표지나 실마리들을 받아들여 해석하는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영악한 한스의  사례


   1904년, 유럽 과학 공동체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인류가 가장 애호하는 꿈들 가운데 하나가 실현되었다 – 인간과 동물 사이 의사소통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그 동물은, Berlin의 퇴직한 교사 Wihelm von Osten 소유의 여덟 살 먹은 종마, Hans였다. 당시의 설명[이를테면, 32, 169]으로 판단하건데, 그 흥분은 그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그리고 냉정한 과학자들에서 동물학자, 심리학자, 의사, 정신과 의사, 생리학자, 수의사들에게까지 퍼져나갔고, 전문가들과 학술 위원회들은 구성된 일단의 분명한 목적을 지닌 집단이 Clever Hans로 유명해진 Hans의 놀라운 공연들이 펼쳐진 그의 마구간이 있는 그 도시 북쪽 근교에 있는 평범한 자갈 마당으로 향했다. 이들 방문객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잔뜩 회의적 생각을 품고 갔지만, 그들이 떠나올 때는 분명 모두 확신에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이 보았던 것에 문자 그대로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직업에 아주 한없는 믿음을 지녔던 von Osten이 성취했던 것은 그의 교육적 재능을 어린 꼬마들한테서 그의 아름다운 말에게로 돌려 산수 뿐만 아니라 시간을 말하고,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사진을 알아보는 재주들, 그리고 그밖에 추가된 다른 많은 믿을 수 없는 능력들을 가르친 것이었다[125]. 

 
   Clever Hans는 그가 알고 있는 답들을 자신의 발굽을 톡톡 두들기는 방식으로 소통했다. 수와 관련 없는 답들은 독일어 글자를 하나씩 톡톡 두들겨서 맞추었다; 그는 가르쳐준 알파벳을 배웠고 글자 a는 한번 두들기고, b는 두번, … , 두들기고 있었다. 그는 지극히 세심한 과학적 검사들을 받았고, 그 검사들은 그의 주인이 어떤 신호가 되었든 비밀리에 보낼, 있을 법하지 않는, 가능성조차도 제거하는 식으로 짜여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들을, 특히von Osten이 있을 때 만큼이나 없을 때에도 거의 대부분을, 깃발 날리게 아주 잘 해치웠다. 1904, 9, 12, 과학자와 전문가들, 프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회원들 몇몇, 베를린 대학에서 온 교수들로 구성된 13인의 위원회는, 속임수나 무심결의 신호보내기와 관련이 없음을 입증하는, 그리고 이 비범한 말에 최고의 과학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존경심을 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그 필자는, 9월 위원회 회원들 가운데 한명이었던, Carl Stumpf 교수였다. 그는 그 괴상한 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천재 말의 관념을 접한다는 바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래서 결정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는, 분명, Stumpf의 조교들 가운데 하나였던 Oskar Pfungst였다(그는 후에 그 주제에 관한 책을 썼다[124]). 그러나 Pfungst는 그저 cand.phil. et med.(철학과 의학 대학원 학생)일 뿐이었고, 대학의 훌륭한 전통에 따라 그 보고서의 공식 필자는 Stumpf가 되었다. Pfungst가 발견한 것은, 그 보고서의 인용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점이었다.

그 말에게 주어진 문제의 해답이 그곳에 있는 이들 가운데 아무도 모르는 것일 경우 그때마다 그는 반응 또는 응답에 실패했다. 이를테면, 그 말 앞에 쓰여진 숫자 또는 세어진 대상들을 놓지만 그것들을 그밖에 다른 사람들한테, 특히 질문하는 사람한테 안보이도록 하면, 그는 예외없이 반응 또는 응답에 실패했다. 그러므로, 그는 세는 것도, 읽는 것도, 산수 문제들을 푸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은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 특히 질문자를 보지 못하게 충분히 큰 가리개로 가리울 때마다 다시금 실패했다. 그러므로 그는 일종의 시각적 도움을 얻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 도움들이 의도적으로 주어질 필요는 없다 – 이것은 이 사례에서 특히 흥미로운 철점(凸點)이다. [127] 
      
그 보고서에서 이어 설명하기를:

    내가 아는 한, 다음 설명만이 이들 사실들과 부합할 유일한 설명이다. 그 말이, 장기간의 문제 풀이 과정에서, 배워야만 했던 것은, 톡톡 두들기면서, 그 주인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사고 과정들의 매 단계마다 동반시키고 있는 몸의 자세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변화들에 더욱 바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었으며, 이들 변화들을 결산 신호들로 쓰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향으로 주의를 긴장시키도록 하는 동기는 그에 수반되는 당근이나 빵과 같은 것을 주는 규칙적 보상이었다. 이런 류의 예기치 않던 독자적 활동과 미세한 움직임들에 대한 지각이 확실하고 정확한 수준에 이르른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그 말의 반응을 끌어내는 움직임들이란 von Osten씨의 경우에는 지극히 미세한 것이었기에 숙련된 관찰자의 주시에서마저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Pfungst씨는 이전 실험실 경험으로 아주 짧은 지속과 뻗음(또는 퍼짐)에 가해지는 시 자극에 대한 지각을 예리하게 다듬었기에, von Osten씨한테서 보여지는, 그 말의 다양한 성취들의 기저로 기능하는 상이한 종류의 움직임들을 알아보는 데에 성공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제까지는 무의식적이었던) 그 자신의 움직임들을 그 말 앞에서 제어하는 데에 성공했고, 마침내 능숙해지자 그는 의도적이지 않던 이들 움직임들을 의도적인 움직임들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제 그 말의 다양한 반응들을, 그에 걸맞는 질문이나 그 어떤 류의 명령을 하지 않고도, 의도된 적절한 움직임들을 써서 맘대로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Pfungst씨는 주의를 행해진 움직임들에 주지 않고 오히려 가능한 한 원하는 숫자에 두었을 때 똑같은 성공을 경험했는데, 그것은 그 경우 그 필수적 움직임은 그가 그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일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28]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 (정직함에 있어 결코 의심할 수 없었던) von Osten씨는 이들 발견들로 인해 마음이 격심하게 뒤흔들렸다. 먼저, 그의 격노는, Pfungst가 희비극이라 묘사했던 식으로, Clever Hans한테 돌아갔지만, 그는 곧이어 바로 그의 말을 다시 신뢰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탐구, 조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전형으로 굳혀진 인간들의 풍조에 따라, 그는 (이 책의 2부에서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차지할 주제로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에 부합하는 실재에 대한 견해보다는 그의 신념들에 부합하는 실재에 대한 견해 쪽을 선택했다.

 

                   
                                         영악한 한스의 충격

 

   Pfungst의 발견이 일반에 알려짐에 따라, 비슷한 또는 더욱 대단한 능력을 지닌 탁월한 또 다른 말들이 Elbersfeld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복잡하게 뒤얽힌 계산들을 환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배웠던, 그리고 그들한테 할애된 시간에 그들을 인터뷰하는 인간들을 재치있는 또는 철학적 촌평으로 놀라게 했던, Mannheim에 있는 말하는(컹컹거리는) 개들과 돼지들을 포함해서 그밖에 다른 여러 동물들이 있었다.


   Pfungst의 결과들이 지닌 무자비한 진실은 이 모든 것들을 산산이 부수어버렸고, 그 요동으로 관심의 방향은 아직까지도 동물행동학이 벗어나고 있지 못한 한 쪽 극단에서 다른 쪽 극단으로 바뀌었다. 전직 Zurich 동물원 관장, H. Hediger 교수는 이러한 충격에 관한, 그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는, 탁월한 논문을 썼다:

 

4반 세기 이상 지속되며 결국 전세계적 논쟁과 엄청난 문헌들을 만들어냈던 툭툭두들겨 의사소통하는 동물들에 몰두하는 이러한 전반적 동향에서, 이러한 거대한 일탈에서, 그때까지 얻어낸 것은 단지 부정적 (즉, 바라던 바에 들어맞는:역주) 귀결들 뿐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본의 아닌 그 어떤 신호보내기도 완벽히 방지함으로써, 다시 말해, 동물들과 심리학적 실험들에서 동물과 사람 사이의 그 어떤 직접적 접촉도 엄격히 제거함으로써, Clever Hans한테 회피란 착상될 수 없었다.[64] 

 

  그러나, 이것은, Hediger가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아이를 목욕물과 함께 버리는 짓이다; 지금 주의가 두어지고 있는 것은, (Pfungst가Clever Hans와 작업하며 실험적으로 확인했던 사실인) 1/5 mm 정도로 작은 근육의 (특히 흉내내는) 움직임들을 정확히 지각하여 해석하는 기상 천외한 동물들의 능력도 아니며, 우리가 알아차릴 수도 제어할 수도 없는 신호들을 우리 인간들은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도 아니다. Hediger의 진술로, “그 동물은 우리를 (우리한테) 불쾌할 정도로 자주 빤히 들여다 보고 있다. 너무도 괴이한, 어떤 의미로는 황당한, 이러한 현실은 지금까지 억압(repression)의  대상이었을 뿐이지, 더욱 강화된 이해와 의사소통 양식을 연구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지는 못했다”[65]. 

  
   공식적으로는 무시되었지만, 이들 신호 또는 징후들은 동물들 사이 그리고 인간들과 동물들 사이 유쾌하고 놀라운 많은 일화들의 주제가 되었다. 그 동물들이 미세한 표지나 실마리들을 읽고 해석하는 데에 전문가여야 한다는 바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그들은 순식간의 평가와 판단 결정으로 생존이 결정되는 상황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다. 당신은 원숭이다 <영장류 연구자 Ray Carpenter가 인류학자 Robert Andrey한테 일찍이 설명했던 것으로>,
 
그리고 당신은 길을 따라 험한 바위를 넘으며 달리다 예치치 않게 또 다른 동물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게 된다. 자 이제, 당신은 그 놈을 공격할 지, 도망칠 지, 그 놈을 무시할지를 결정하기 전에 일련의 판단들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원숭인가 아닌가? 원숭이가 아니라면, 원숭이한테 적대적인 놈인가 아닌가? 원숭이라면, 암컷인가 숫컷인가? 암컷이라면, 매력적인가 아닌가? 숫컷이라면, 다 큰 놈인가 어린 놈인가? 다 큰 놈이라면, 내 집단에 속하는가 다른 편에 속하는가? 내 집단에 속하는 놈이라면, 그때 그 놈의 지위는 무엇이며, 내 위인가 아래인가? 당신은 이 모든 판단 결정을 대략 1/5초 내에 처리하고 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당신은 공격당할 수 있다. [8]   

   

   동물, 특히, 고양이, 개, 혹은 말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감정 실린 쏟아냄들<즉,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의 지적 태도들 가운데 일부를 내던지도록 하는, 그래서 동물들한테는 더욱 자발적이도록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쏟아냄들>이 문제로 될 때 그 동물이 지각에서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해지게 되는 지를 알고 있다. Hediger는 2차 대전 중 전투 상황에서 훈련받지도 않았음에도 스스로 알아서 15mm 포탄을 주워 포구(砲口)에 장착했던 영국 포병 부대의 마스코트 곰에 대한 기사를 언급하고 있다 [57].

 
   전해지는 또 다른 들어맞는 이야기는, 휴가를 등산, 낚시, 카누타기로 보내기 좋아하는 텍사스 사람 Robert F. Leslie가 쓴 “저녘 먹으로 온 곰” 이야기다[87]. 어느 날 오후, 캐나다 서부 황야에서 낚시질 하는 사이 거대한 흑곰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혼자, 비무장이었기에, 곰에게 자신의 우호적 감정들을 납득시키며 자신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동정을 바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 상황은, 그에 대한 지침을 줄만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분명 이성과 지성이 전혀 도움이 안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창조성을 발휘케 하는 혼동의 이러한 전형적 사례에서, 그는 쓸 데 없는 생각하기로 지체하지 않고 잡았던 송어 모두를 곰한테 먹였고, 그 곰과 같이 강둑에 앉자 그에게 반쯤 기댈 정도로 그 곰은 붙임성을 갖게 되었다. 몇 칠이 지나면서 점차 엄청 가까운 관계로 발전한 것은, 곰의 필요와 일시적 기분들에 바탕한, 그리고 인간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고 그러고 싶어 한다는 점에 대한 그의 커져가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러한 평범치 않은 이야기와 관련된 상세한 것들 모두에 관해 Leslie와 광범위한 의견을 서신으로 교환했던 Hediger는 그 이야기를, 특히 곰의 행동에 대한 그밖에 다른 많은 유사한 보고들에 비추어 보면서, 거짓없는 기사로 간주했다.

 

 

                                                    미세한, 교묘한 권력

 

   Clever Hans 충격에 용케 영향받지 않았던, 그러나 실험자들과 피험자들 사이를 넘나들며 미세한 실마리들을 연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했던 연구자는, Clever Hans 이야기의 영어판을 편집했던 심리학자 Robert Rosenthal이었다. 이 이름은, 실험자가 암묵적으로 당연히 여기는 것들과 그의 편견들이 놀라울 정도로 쥐들의 과업 수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실험자가 자신의 편견을 배제하고 있다고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럴 수 있음을 보여주는 Harvard 대학 실험으로 연결된다[145].


   Rosenthal은 또한 인간 존재들의 의도적이지만 감추어진 편견의 영향, 그 효과를 연구했다. 피험자들한테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 나름대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성공한 정도를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 –10에서부터 가장 성공적인 경우 +10에 이르기까지를> 피험자들이 판단하는 데에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기준들이면 어떤 것이든 사용하라고 요구했다. (그 사진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것이었고, 수많은 피험자들에 대한 일련의 표준화된 검사들에서, 압도적으로 ‘0’라는 응답을 야기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0에서 +10에 이르는 등급에 따라 생각나는 대로 매겨진 평가 분류는 각각의 실험자한테 임의로 맡겨졌고, 각각의 실험자는 그의 피험자들한테 <그들이 그 사진들을 가능한 한 임의로 할당된 가치에 부합하도록 평가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도록 지시받았다. 실험자들은 촬영되었고, 그 실험이 무엇에 관한 것인 지는 알지만 해당 실험자가 그의 피험자들에게 고르도록 하려 하고 있는 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큰 규모의 관찰자 그룹에게 보여졌다. 관찰자들의 과제는 촬영된 필름을 보면서 이 수를 짐작하는 것이었다. Rosenthal이 보고한 것처럼, 그들 추측의 정확성은 각각의 실험자가 그의 피험자들한테 고르게 하고자 했던 평가 분류들에 관찰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그 분류들을 직접 언급 혹은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접근해 쓸 수 있었다는 바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평상시 쓰는 지각과 지적 깜냥들로는 더 이상 그에 대한 해답들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의식적 제어를 받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 그 상황이 갖는 당황스럽고 헷갈리는 측면들로 인해 활성화되는 그밖에 다른 어떤 깜냥들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Rosenthal의 작업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리고 우리가 의식적으로는 거의 제어할 수 없는 (우리한테 가해지는 어떤 것) 영향에는 전혀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아주 명확히 했다. 소름끼칠 정도로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자신들을 주의깊고 조심스러운 사람들로 우리가 믿는다하더라도 우리 자신들은, 아주 어렴풋이 또는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타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우리는 의식적으로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다할지라도 전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의 영향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이는 특히 가족 상호작용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이를테면, 2장 Mary Poppins 이야기 이후 3쪽에 걸쳐 언급된 가족들 내 이중구속의 사례들에서, 종종 역설적 메시지의 반은, 자신의 아이한테 2개의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나어린 비행 소년/소녀의 어머니의 경우에서처럼, 말이 아닌 것들로 암암리에 주어진다: 훌륭한 행동들과 사회의 규칙들을 존중할 것을 말로 요구하는 “공적”, 검열, 처벌하는 태도; 그리고 솔직히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외부 관찰자 특히 <그/그녀의 미심쩍은 공훈에 대한 그녀의 과묵한 칭찬과 그녀의 희미한 눈빛에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는> 비행 소년/소녀한테는 아주 뚜렷이 보이는 말이 아닌 것들로 유혹하는 태도.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치료자는 정말 무심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이유로 그 문제에 대해 치료자가 가망없음을 느끼거나 그 문제로 혐오감을 느낄 경우, 환자의 문제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은, 그 문제가, 음주벽과 같은, 당사자 자신의 사적 생활에서 당사자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일 경우 일어나기 쉽다. 치료자는 그때 긍정적으로 말을 건네겠지만 은연중에 부정적 방식으로 그 환자한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비슷하게, 치료자의 직업적 우려는, 최면치료와 관련된 오래된 경구<최면 효과는 치료자가 최면 효과가 위험하다고 믿는다면 위험할 수 있다>에 나타난 것처럼, 우려를 품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Rosenthal과 또 다른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자신들의 발견들을 공표하기 시작하면서, 이들 미세하지만 굉장한 권력으로 작용하는 단서 또는 실마리들이 어떻게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전송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대단히 많은 논쟁들이 일어났다. 어떤 이의 견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반적 방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로부터 <아마도 –10과 +10 사이 독립된 평가 분류가 전혀 다른 사안이었던 것처럼> 구체적인 응답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 분야에서 고도의 상상력이 동원된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또 하나의 연구를 Chicago 대학의 Eckhard H. Hess가 수행했고 그 연구로 불완전하지만 해답이 주어졌다. Hess의 이 연구는 우연한 사건 하나로 인해 시작되었다:

 

5년 전 어느 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아주 아름다운 동물 사진들이 실린 책을 훓어보고 있었다. 이를 보고 아내는 불빛이 약하다고 말했다 – 이때 나의 동공은 비상하게 커져 있었다. 침대 옆 등으로 충분히 밝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내 동공의 팽창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68

]

   이 사건에 자극받아 이어진 실험들에서, Hess는 결단코 동공의 크기는 <가끔씩 당연시되는 것처럼> 눈에 가해지는 빛의 강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요인들 또한 아주 많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흔히 있는 일로, 작가들은 오래 전에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미움으로 좁아진 그의 눈”, “사랑으로 부푼 그녀의 눈”. 그러나 Hess의 몫은 그것들이 시적 이미지들 그 이상을 표현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마술사들이 자주 동공 크기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기다린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카드의 패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하던 이한테그 카드를 까보였을 때 그의 동공은 확대될 것이다. 중국의 비취 상인들은 구매할 수 있는 이의 눈에서 이와 똑같은 반응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가 좋아하기에 그래서 높은 가격에라도 기꺼이 살 수 있을 보석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한다.


   Hess의 실험들 가운데 하나는, 그의 피험자들한테 매력적인 젊은 여인의 얼굴 사진 두 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두 장의 사진은, 그 중 한 장의 동공들을 특별히 크게 수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서로 똑같이 동일하게 인화된 것들이었다. Hess가 쓴 바로, 수정된 사진에 대한 평균 반응은,

 

작은 동공의 사진에 대한 강한 반응보다 2배 이상 강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실험이 끝나고 그 남자들한테 질문했을 때,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두 장의 사진이 서로 똑같이 동일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하나가 “더 여성적”이라거나 “더 예쁘다”고 하거나 “더 상냥하다”고 말했다. 그 하나의 사진이 다른 것보다 동공이 더 크다는 점을 알아차린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그들한테 그 차이는 보였어야 했다. 오래 전 중세 시대, 여자들은 벨라도나(이 단어는 이태리어로 “아름다운 여자”를 뜻한다) 약으로 그들의 동공을 팽창시켰다. 분명코 큰 동공은 남자들한테 매력적이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적어도 우리의 피험자들, 해당 주체들한테는, 명백히 말이 아닌 수준 또는 차원에서 나타난 것들이다. 큰 동공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 그 동공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그녀와 함께 하고 있는 남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라고 과감히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69]

 

   이러한 극히 미묘한 통신 또는 소통 채널들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정말 아주 비옥한 영역의 겉만을 건드렸을 뿐이며, 그 이전에 이미 우리는 동공의 크기가, 보기와 듣기는 물론이고 냄새과 촉각까지 수반하는, 특정 신체 반응들에 기초한, 비언어적 소통의 수많은 양식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초감각적 지각”

 

   이 모든 요점들이 취하고 있는 한 방향: 우리가 처한 현실에, <달리 말해, 우리가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우리 행동을 결정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통신 또는 소통의 주고받음에 우리가 끊임없이 관여하고 있다는 바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지각들로부터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이해와 직관을 얻으며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렇게 마음이 기울어진 독자라면 대개 어떤 이라도 초감각적 지각(ESP) 전문가로 만들 수 있는 Rhine-형 실험을 계획할 수 있다. 이들 실험들에서는 5개의 상징들, 십자, 원, 정사각형, 정오각형, 물결선들이 그려진 한 벌의 카드를 사용한다. 실험자는 자기가 쥐고 있는 카드들을, 피험자가 볼 수 없다고 확신하며, 자기 카드들을 하나씩 주시하고, 피험자는 ESP로 실험자가 5개의 상징들 가운데 어떤 것을 주시하고 있는지 추측하고 있다고 해보자. 각 카드마다 추측이 하나씩 있고, 추측들이 모두 행해진 다음 실험자는 피험자한테 맞추었는지 틀렸는지를 말한다. 이는, 그 과제의 명백한 불가능성이 우리 대다수로 하여금 가장 미세한 우리 지각들에, 아마도 가파른 절망 상태에서, 의존하게끔 하여 그러한 창조적 혼동을 만들어내는 상황들 가운데 하나를 되풀이한 것이다. 실험자가, 어떤 상징을 주시하는 것과 같은, 미세한 어떤 단서나 실마리를 주는 경우가 있다면, 또는 바로 그때, 이를테면 인접한 방에서, 언제나 어떤 아스라한 잡음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피험자, 해당 주체의 “ESP” 곡선은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며 그의 성공율은, 그 미세한 똑같은 단서가 항상 똑같은 상징에 대해 주어지고 있다면, 당연히, 100%에 근접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속임수 마술은 이런 식으로 달성될 수 있지만, 그와 관련해서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이런 종류의 신호보내기가 피험자 또는 해당 주체의 외부에 완전히 존속되고 있음에도 (또는 정확히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신호보내기는 아주 놀랄 정도로 성공적이라는 사실이다. 십중팔구, 수많은 대면 독심술과 투시술은 몇몇 사람들의 이들 미세한 단서들에 대한 타고난 감수성에 바탕하고 있다.

 
   행동/행태 과학자들이 이들 현상들에 대해 알아차리기 이미 오래 전에, Edgar Allan Poe는 이러한 능력을 “Rue 시체 보관소의 살인자들”의 기초로 삼았다. 그 소설의 화자와, 매우 하챦은 그리고 미미한 사실들과 사건들에 대한 유별나게 예리한 관찰자로서 묘사되고 있는, 그의 친구 Dupin은 파리를 여행하고 있었다. 돌연 Dupin이 말한다, “그는 정말 쪼그많다, 사실이야, 그리고 Théâtre des Variétés에 더 어울릴 거야.” 다른 사람들은 말이 안나올 정도로 깜짝 놀란다. “Dupin”, 그는 침착하게 말한다:

 

이것은 나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주저없이, 내가 놀랬음을 그리고 결코 내 감각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대체 자네는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 ” 여기서 내가 잠깐 멈춘 것은, 그가 정말로 내가 생각했던 사람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랬다. “ – Chantilly를” 하고 그는 말하며, 이어 “왜 잠깐 멈칫 한거지?” 하고 물으며, “너는 그의 왜소한 체격이 비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신한테 말했쟎아” 하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나의 반성 또는 성찰의 주제를 형성했던 것이다. Chantilly는 왕년에, 연극에 미쳐 이른바 Crébillion의 비극에서 Xerexes의 역을 해보려 하다 애쓴 보람도 없이 악명높은 풍자로 공격당했던, Rue거리의 구두수선공 Denis였다.
   “제발, 말해주게나”, 나는 간절히 말했다, “그 방법을 –, 자네로 하여금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내 영혼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한 그 방법이 있다면 말일세.” 

 

  그리고 Poe는, Dupin의 입을 통해, 15분 사이에 두 사람이 경험한 사건들을 과학적으로 납득토록 재구성하며, 그때는 알려지지 않았던 개념들, <자유 연상>, <비언어적 소통>, 그리고 이런 전적으로 허구적인 재구성을 현대의 일부 행동/행태 연구와 같은 방식으로 읽도록 해주는 <그밖에 행동 분석들>과 같은 개념들을 예기(豫期)하고 있다. 
  

 혼동의 이득에 관한 이번 장의 결론을 내리기 전에, 정신분석과 같이 그렇게 아주 진지한 주제와 관련하여 유일한 우스운 면에 대한 간략히 언급은 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잘 알려진 바로,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는 긴 소파에 뉘여지고 자유 연상이라 불렀던 마음의 특별한 혼동 형식을 실행하게, 말인즉, 그의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것이나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 분석가는, 환자의 시야에서 벗어나, 그의 뒤에 앉는다. 이러한 설정에 대한 공식 이유는, 환자가 분석가의 현존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연상/연계들이 자유로이 흐르도록, 특히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신분석의 유추를 사용하는 것, 정면/눈앞에서 외면당한 것들은 등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온다: 분석가의 현존을 잊기는커녕, 환자는 그의 등뒤에서 다가오는 미세한 청각적 실마리들에 대해 예리한 감각을 발달시킨다. 의사가 펜으로 휘갈겨 쓸 때 나는 소리, 그 의사의 의자 삐꺽거리는 소리,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그 의사의 수염 만지작거리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은 점차 그 환자한테 그가 자유 연상을 해야 하는지, 일정한 규칙적 숨쉬기가 자신한테 그의 치료사가 마침내 졸고 있음을 알려줄 때에 이르러 자유 연상을 그만 두어도 되는지를 일러주는 고도의 중요한 메시지들로 발전된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 RC로 빠르게 방향짓기 위한 리글러의 요지 - RC의 공통된 4개의 공준 나공 2014.04.17 3282
14 바츨라빅의 "상황은 절망적, 하지만, 심각하지 않다"의 에피그라프 나공 2014.04.14 1721
13 고든 파스크의 '상응, 여론, 일관성,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강간' 나공 2014.04.14 1841
12 K.M. Sayre의 "사이버네틱스" 나공 2014.04.14 1982
11 사이버네틱스 역사 계통도 v.1.0 나공 2014.04.14 1531
10 고든 파스크 선생의 사이버네틱스 나공 2014.04.14 3092
9 형식의 법칙들 나공 2014.04.14 2385
8 발생적 인식론 나공 2014.04.14 1630
7 추납(abduction)에 대해: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Mind and Nature' 5장, 3절 나공 2014.04.14 2192
6 Constructivism Foundations 한글 목차: vol 1 ~ vol 8(3)까지 나공 2014.04.14 2117
» How rea lis real? 1-3. 혼동의 이득들 나공 2011.03.13 1949
4 How rea lis real? 1-2. 역설들 file 나공 2011.03.06 5537
3 How rea lis real? 1-1. 번역의 고통 나공 2011.03.01 6126
2 How rea lis real? 서문 나공 2011.02.28 5835
1 How rea lis real? 폴 바츨라빅의 "How real is real?" 나공 2011.02.27 8487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회원:
5
새 글:
0
등록일:
2014.06.19

오늘:
42
어제:
56
전체:
53,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