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폰 글라저스펠트의 책과 논문들과 NHK의 번역을 모은 게시판

Constructivist Foundation 2(1)


Ernst von Glasersfeld

 

 

할 수만 있다면가장 먼저프랑스 노래 하날 부를 것이다: ‘사랑의 기쁨은 잠깐이지만 그 고통은 평생을 간다.’ 이리하는 것은나 또한 로맨틱한(Romantic) 사랑과 그로 인한 내적외적 활기를 높이 존중한다는 바를출발점에서 밝히고 싶어서다그럼에도감정과 관련해 말한다 한들 새로운 건 없을 것이다나는 사랑의 합리적 기초와 관련해서만 말할 수 있고또한 이러한 측면은 숙고할만한 것임을 주장하고자 한다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그러한 합리적 측면이 그 행위의 기초가 된다라든가사랑이란 것이 여기 내가 기술한 것만이라든가 하는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바다내가 단지 제시하고 싶은 이론은 이렇다: ‘사랑이란 현상도 합리적 관점에서 탐구할 수 있는 측면을 갖고 있으며이런 방식을 써서필시 가정(家庭)에서 중요하게 쓰일 결론들에 이를 수 있다.’

 

바라건데내 제목이 한 동안 당신을 머뭇거리게 했기를... 의도적으로 그런 까닭은내가 이해한 사랑은 당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어떤 것임을시작부터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말한 것처럼당신들 둘이 있어야 한다이는당신이 당신의 생활 세계에서 당신 자신과 또 다른 한 사람을 의식적으로 골라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분리 과정은 일정한 반성 수준즉 반성적 생각하기를 필요로 한다반복하자면나는 오직 합리적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랑의 측면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엄마의 가슴 쪽으로 로봇처럼 자신있게 향하는 갓난아이는 사랑을 전혀 모른다후에사춘기에 이르러다른 이의 몸의 특정 부위들에 자동적으로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이것 또한 자체로는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일정 여건에서신체 접촉에 이어 개인적정서적 관계가 유발될 수도 있지만이는 의심없이 당연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일이 결단코 아니다.

 

사랑의 핵심 전제 조건으로 개념 형성이 필요한데나는 이것을 자기 자신과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자율적 개인의 구성이라 부르고 싶다이 구성을 성취하는 데에는 상당한 작업이 요구된다생명삶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서그래서 일반 인간들의 믿음에서 보자면타자들은 주어져 있는 것이다.

 

타자들이란철학자들이 그들 용어로존재론적 전제(ontological precondition)라 부르는 것으로그와 같은 존재론적 전제들은 그 정당성을 의심해서는 안되는 것들이다세계에 타자들이 있다는 점그들이 실재한다는 점은 이른바 하나의 사실이다당신이 그들을 인정하고 난 다음에는그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 또는 그들은 어디서 생겨났는지 묻지 않는다하지만그들이 '무엇'과 같은지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며그들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내가 여기 쓰고 싶은 구성주의 생각하기 방식은 오로지 그러한 전통과 그 존재론적 전제들에서 벗어난 하나의 시도다해서원하는 것은서구 전통에서 논의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 가정관념원리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다이런 까닭에 내가 경고할 수밖에 없는 바나의 설명들은 무시무시한 입장에 이르러쟁점들을 제기하는데학교 철학에 만족하면서 이를 뒤에 남겨두는 위험을 감수하기 싫은 이라면 이는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물론그토록 오랫동안 잘 기능했던 전통과 절연하는 것은잘 안내되는 경우분명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다여기서 내가 하는 대답은나한테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보이기에 답하는 것으로간단하다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심리상담자 또는 심리치료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오늘날 실상이며그렇다면필시 생명삶에 대한 일반적 견해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이러한 논의로 구성주의가 존재할 권리를 갖고 있음이 납득되지 않는다면여하튼 듣기를 바란다그런 연후에야 나의 가정들에 도전할 훨씬 더 나은 입장에 설 수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내가 기술하는 구성주의가 근본적이자 급진적인 것은우리 지식을 내적인 구성으로 설명하려 하지주어진 어떤 것알려지기 전 거기에 있는 어떤 것의 재현으로통상 하는 것처럼설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현 이론에 대한 거절은 기본에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이를 거절한 최초 사람이 내가 아님을 강조한다.한편으로는 그것들이 생겨난 시대에는 이해되지 않았기에또 한편으로는 확립된 철학적정치적 체제의 관념들과 들어맞지 않았기에서양 철학사의 가장자리에 남겨졌던 관념들에서내 반대는 생겨났다.

 

일종의 인식론적 스캐빈져(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처럼 널려 있는 파편들을 주워 최선을 다해 그것들을 이어맞추려 했다이들 파편들의 기원의 역사는 적어도 250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거기에는 구성에 필요한 많은 블럭들이 있다.

 

나는 조지아 대학에서 이러한 구성주의의 역사를 명확히 다루는 강좌를 12년 동안 진행했다. 강좌는 매학기 14주에 걸쳐 진행되었지만나한테는 언제나 너무 부족했다여기서는당신이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납득될만한 단지 짤막한 발췌만을 내놓는다.

 

문서상으로 추적할 수 있는 관련된 역사는 기원전 5, 6세기의 소크라테스 이전 학파들에서 시작된다소크라테스 이전 학파들은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예기치 않게 발견할그 시절에도 상당히 발전했던 테크놀러지 사회에서 활동했다.

 

단어 테크놀러지를 쓴 것은그들이 그 시대에강에 댐을 만들고 청동을 주조할 수 있었다는훌륭한 도자기들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약물에 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는생물학과 화학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그리고 천문학에서 이집트인들의 지식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의미에서다소크라테스 이전 시기 철학자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기 인물들과하나 이상의 분야에서 탁월했다는 점에서매우 비슷하다는 점 또한 추가해야 한다그들은 작가미술가음악가과학자그리고 의사들이었다그들은 정말 모든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그들은 또한 그들 지식을 통합하려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그렇게 하면서자연스레 다음 질문을 제기하게 되었다이 모든 지식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소크라테스 이전 학파들 사람들은 특히 실용적이어서지식의 문제에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관찰하기를 써서,달라붙었다그들이 본 것은이를테면소리(noise)에 겁먹는 동물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라는 새뜨거운 스토브에 닿으면 움찔하는 아이였다이것들은 경험 데이터(資料)로 이로부터 그들은 지식 이론을 발달시켰다.

 

정말이런 방식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나는 모든 아이들이 이와 똑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당신이 이런 방식으로 시작할 경우이어 바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우리는 우리 감각기관들을 거쳐오는 메시지들을 받으며그것들이 우리한테 보여주는 것은 세상을 닮은 어떤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메시지를 '정보'라 부른다정보는 외부 세계에서 머리두뇌영혼또는 생각하기의 중심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들어온다그것은 간단하기에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그것은 건강한소박한누구나 아는 지식을 만족시키며 쉬이 논박할 수 없다하지만이런 맥락의 생각을 따르다 보면조만간논리적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당신은 사실상 마지막까지 풀 수 없는 역설 신세를 지게 된다소크라테스 이전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그때 이미 이런 황당한 결론에 이르렀다.

 

역설은 아래 이어지는 숙고에서 생겨난다당신 자신 내부의 세상의 이미지는 당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가정할 경우이 이미지의 정확성 여부그것이 외부 세계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묻는 것은 피할 수 없다그러나 이것은 당신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당신은 내부 이미지를 외부 세계와 비교해야만 하지만외부 세계는 오직 당신의 감각기관들을 거쳐서만 이를 수 있기에그러한 비교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당신은 분명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하지만이것또한당신이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 그리고 지각한 것을 분절 혹은 표현하는 방식의 결과일 것이다아일랜드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이 점을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은그가 '우리는 오로지 관념과 관념만을 비교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할 때였다.

 

그럼에도자신이 갖고 있는 그 세상에 속한다는 이미지가 "(true)" 이미지임을 주장하고 싶은 경우가 물론 있을 것이다이러한 갈망은 2500년 이상의 서양 철학사에 상존하며 추진력으로 기능하고 있다가장 똑똑한 사람들사상가작가예술가들이 이 논리적 불가능성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초지일관 노력했으며 지금도 그렇다늦게나마 깨달아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성공한 이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우리가 우리 용어로 알고 표현하기 전우리 지식이란 걸 그 세상 있는 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경우이때,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소크라테스 이전 학파 이래회의론자들은 그와 같은 진리(truth)가 입증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그 이미지와 그것의 원본이라 가정된 것과 비교하는 것이어야만 하며이는 정확히 불가능하다는 논의를 끈질기게 반복해 오고 있다.

 

보다 최근의 철학사에서 영국 경험론자들로크버클리그리고 흄은 그 외부 세계의 지각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약화시켰다로크는 이차 특징들즉 감관(감각 기관들을 거친지각들은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버클리는 정확히 같은 논의들을 마찬가지로 일차 특징들에 적용했고데카르트가 그러한 세계에 귀속시켰던 그 특징들도 똑같이 신뢰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이어 흄에 이르러우리가 관계즉 한 점에서 다른 점에 이르는 모든 연결로 이해한 모든 것들은 심적 과정의 결과이며그러므로 그것들은 오로지 생각하는 존재만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그의 통찰력이 담긴 회의론적 생각하기 방식을 지지했다이것이 명백히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우리 경험 세계에서 사물들을 서로서로 '우리'가 관계짓고 있으며따라서 그것들이 (경험 밖실재에서 서로 어떻게 관계되는지 그리고 또한 관계 여부 마저 우리는 결단코 말할 수 없다.

 

이것을 증명하는 데 쓰일 수 있는 간단한 예를 하나 든다당신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전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고 하자그때 하나가 다른 것에 비해 더 큰지 아닌지 알려면 당신은 일정한 조작들을 행해야 한다적어도한 그루 꼭대기를 마음에 그린 다음 이어 당신의 '주의(attention)'를 움직여 다른 그루 꼭대기에 이르러야 한다.

 

당신은 당신 주의가 움직인 선을 고려하고 그 선이 아래로 또는 위로 움직였는가를 확인한 연후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올려다 보았기에 오른쪽 전나무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당신 주의를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만으로 두 나무 사이 관계를 창조하고 있다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지각한 대로 나타나지만그것을 생성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조작들이다.

 

여러분도 필시 알고 있는 것으로칸트는 당시에 흄의 관념들이 자신을 자신의 독단적 미몽에서 깨어나도록 했다고 말했다칸트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서 공간과 시간은 그와 같은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각 장치임을 증명함으로써 실재론적 세계관 밑에 깔린 깔판을 잡아빼 버렸다공간과 시간이 우리 경험의 특징인 것은 카메라의 광학적 특징이 찍히고 있는 풍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렌즈에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전문적이며 기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이것은 우리가 우리 삶을 사는 방법에 엄청난 귀결들을 지니고 있다공간과 시간은 우리가 사물들을 주시하는 가운데 우리 경험 속으로 옮겨 온다는 작업 가설을 당신이 받아들일 경우그때 바로 분명해지는 것은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기 이전 그 자체 세계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는 점이다우리의 모든 생각들모든 이미지들은 구조들로서공간과 시간에서 형성된 관계들의 골조 없이는 구성유지될 수 없는 것들이다이런 개념들이 없는 그 세계상상될 수 없으며 변함없이 시인과 예술가들을 동()하게 하는 신비주의자들의 "聖體(sacred unity)"로 남겨지지만모든 합리적 용어들과 해석들은 그저 그 세계를 미끄러져 통과한 것이기에이성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이러한 견해는 칸트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개개인들이 주장했던 바다그럼에도철학사에서 조그만 측선으로만 유지되었을 뿐이다그러는 내내 주류는 자신의 전통방침에 따른 회피 시도를 계속했다그것은 항상 에두른 탈출로를 써서 지식의 역설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었다.

 

1900년 이래상황은 철저한 변화를 겪고 있다물리학에서 격변과 양자역학의 출현은 과학에서 '세계는 객관적으로 지각될 수 있다'는 착각을 제거했다혁명적 언명들로는하이젠베르크의 구절, "과학자가 더 깊이 바라볼수록,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된다"(하이젠베르크 1955, p. 17), '물리적 대상 개념은 인간 마음의 자유로운 창조물이다'(아인쉬타인 1954, p.291)라는 아인쉬타인의 설명이 있다.

 

물론지식 이론에 관한 이러한 상세한 입문이 우리 이야기 주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일견 분명치 않다그럼에도이 주제에 작은 의미라도 부여하려면다음 견해에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합리적 지식을 문제삼고 있는 한우리는 그 지식을 우리 경험 세계에서 구성해야 하기에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서 이를 할 수는 없기에우리 모두는 불가피하게 혼자다.

 

많은 이들이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언어 소통을 거쳐서또는 영상들을 통해 알고 믿는 많은 것들을 배우기에이는 참이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이를 논박하기 위해나는 당장 이론적 여행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최근 수 십년 사이구성론적 견해(이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 경험 세계를 생성시킨다)는 사이버네틱스의 발전에 따라 쾌나 강해졌다한편에서는하인츠 폰 푀르스터와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신경생리학적생물학적 작업들이 구성론에 과학적 발판을 만들어 주었고다른 한편에서는클로드 쉐넌과 노베르트 위너가 정식화시킨 통신이론이 최초로 언어적 소통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통신이론이 밝혀준 것은가르치기심리치료그리고 사회 일반에서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 것이었다.

 

언어는일상에서, '그 사람한테서 저 사람으로 생각관념지식그리고 감정들 전달하기'라는 착각을 만들어낸다.그 사람이 말하거나 쓰면저 사람은 듣거나 읽으며이런 식으로 그 사람이 어찌 생각하고 느끼는지 통찰력을 얻는다그럼에도이것은 착각이다이를 분명히 보고자 한다면말을 주고받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무언가 말을 하면 나는 소음(noise)을 만들어내고쓰는 경우라면 시각적 기호들을 만들어낸다그것들이 내 언어에 익숙한 것들이므로이 소리나 기호를 듣거나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단어로 알아본다그들이 살아가는 내내그들은 이들 단어들에 의미들즉 대상상황과정 경험과 느낌들을 귀속시킨다이것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만들었던 자신들의 연상(連想)들이다모든 이들이 그들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서 의미들을 창조하지만그것들은 사람 마다마다 가지각색이다.

 

이로써 내가 가리키고자 하는 것은내 단어들은 내 것이 아닌 다른 이들 것인 의미와 개념들을 그들 안에서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우리가 가장 평범한 것에 관해사과나무연필또는 교통 규칙에 관해 말할 때조차이들 단어들에 우리가 연계시키는 관념들은 모두한테 같은 것들이 아니다물론그 차이들이 일상에서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데그것은우리 의미가 다른 이들의 의미와 주목할 정도로 차이를 야기시키지 않을 만큼 부합하도록우리의 주관적 의미들이 수많은 교환들을 거치면서 닳고 닳아버려서 그렇다그러나 그것들이 마찰없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사실이 그것들이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당신이 좀 흔하지 않은 문제들이를테면철학에 관해 말하기 시작하자마자해당 용어들에 대한 개인적 차이들은 아주 급속히 드러나게 된다.

 

이런 일을 우리 모두는 꽤나 빈번하게 겪고 있음에도언어가 운송 수단이라는 착각은 지속된다말한 것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 경우 당신은 더 큰 소리로 말한다많은 교사들이 이러는 걸 당신도 보고 알고 있다뉘른베르크 깔대기가 그럴싸한 가르치기 방법인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을게다가마치 프린터 잉크 자국 밑에서 감춰진 단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책을 읽는 학생들 또한 보고 알고 있다.

 

소통에 대한 사이버네틱스 이론이 오늘날 명백히 입증한 바직접적 구두(口頭전달이라는 관념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다전송송신자수신자란당신이 언어학 용어들의 개념 내용을 다룰 때오해를 야기시키는 은유들이다.

 

한 사람에게서 다른 이한테로 움직이는 것은 소리그래픽 이미지그리고 전신(電信)에서는 전기적 충격이다이런 것들은 소리전기의 짧은 진동 패턴이다이들 패턴들은 재인(再認)될 수 있고기호에 어의(語意)를 연결시킨 코드를 알고 있는 경우의미 있는 기호들로 해독될 수 있다그리고 기호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연결은 오로지 모든 개개인이 언어를 경험하며 창조해야 했던 연상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그러므로단어의 의미들은 주관적이며,빈번하게 쓰여 서로서로 닳고 갈아져 근접해지게 되는 일상 영역에서조차변함없이 주관적인 것이다.

 

우리 화제에 중요한 사이버네틱스의 두번째 요소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라는 관념이다우리 감관(感官)들이 신의 개입 덕택에 그러한 논리적 모순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그렇게 그 세계의 정확한 이미지를 우리한테 부여하고 있다는 신비적 믿음을우리가데카르트와는 달리공유하지 않을 경우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지식이라 부르는 것이 어떻게 구성 유지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모델을 고안해야 한다.

 

그 방식을 삐아제보다 더 잘 요약한 사람은 없었다사이버네틱스가 발명되기 전 1930년대에 이미 그는 그의 책, La construction du réel chez l’enfant 에서 "마음은 그 자신을 조직함으로써 세계를 조직한다"(Piaget 1937, p.311)고 썼다.

 

나는 이제 이러한 구성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간략히 보일 것이다우리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은 가설들이지 사실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그렇지만그것은 당신의 수없이 반복된 경험들에 아주 잘 들어맞는 가설들이다우선젖먹이는 내부와 외부 세계 사이 차이를 모른다이 구별은 발생되어야 하는 것이다한번은 여기서 해보고 이어 다음 번에는 저기서 해보면서점차 경계가 형성된다내부에 있는 것이 내가 되고외부에 있는 것은 세계가 된다한 살쯤아이는 거기까지 생각은 못하지만사물들을 그에 맞게 적절히 다루는 것을 배운다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순환적 반응(circular reaction)"으로 가리켰던 것들에 대한 삐아제의 관찰들이다코드를 잡아당기는 조그만 손은 나한테 속한다나의 잡아당김으로 울고 있는 벨은 밖에 있다이런 그리고 많은 유사한 행위들로,피조물 후에 자아라 불린다 은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동시에아이는 자신의 일부가 아닌 사물들에서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이 즐겁다는 걸 배운다자기 엄지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너무 세게 물 경우아프다그래서 그것들은 자신한테 속한다담요 끝자락이나 곰 인형의 귀 또는 그녀 입 안에 집어넣는 그 어떤 것들하고는 다른 것들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타자"라는 관념그리고 후에 사회라는 개념이 일련의 길고 긴 경험들에 기반해서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상상할 수 있다무수한 관찰들에서 이끌어낸 결론은, '최초조그만 아이들은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였다구름과 달이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것은당신 자신이 집에서 정원으로 달려나오는 것과 같이뭔가 의도가 담긴 것이다나무가 그 커다란 가지를 움직이는 것은당신이 당신 자신의 팔을 들어올리는 것 못지 않은 의식적 양식(意識的 樣式)이다그렇지만마침내 당신은 그 차이를 구별하는 걸 배우게 된다잡고 싶은 개구리 앞에서 접근할 경우 보고 있는 것 같기에그리고 소리를 내는 경우 물로 뛰어들기에 당신은 알아차림(自覺)이 개구리한테 귀속된다는 것을 배운다당신은 또한 집에 있는 개나 고양이한테도 일정 의도들을 귀속시킨다;가족 인간 구성원들의 행동을 보고당신은 마침내그들이 가끔씩은 체계적으로 행동한다는 결론을 내리고이어 타자들의 목표는 무엇일지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려는 그 방법들을 찾아내려는 가없는 과제에 착수한다.

 

칸트는 이를 그의 순수이성비판 첫 판본에서 요약했다: "내가 또 다른 주체를 상상하고 싶을 경우나는 나를 주체 자신으로 만들었던 어떤 것이든 그저 이 타자한테 귀속시키는 것만으로 이를 할 수 있다." (Kant 1781, A353) 이는 자발적 움직임과 자각으로 시작해서이어 결단의도계획들에 이르고마침내타자들이 그들 자신의 목표들을 추구하는지 아닌지를 자기 자신 추구하려는 방식들을 써서 연역(演繹)하려는 시도로 끝맺는다실상이 그런 것 같으면 하시라도그런 결론이 정당화되고 있다고 느낄 때타자들이 가정된 그들 목표를 당신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당신은 그러한 바를 다음과 같은 사실의 확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다른 사람들의 세계는 당신이 자신의 경험들로 창조했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이는 내가 주장했던 구성주의 이론에 극도로 중요한 점이다이것을 토대로 허용되는 주장; '내 지식은 그것이 구성되었던 개별적 경험 세계보다 훨씬 더 넓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타자가 내 지식을 습득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볼 때그렇기에,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에 대해 말할 수 있다이러한 상호주관성은 내 경험적 현실의 안정성에 중대한 기여를 하며한발 더 나아가윤리학 분야에 새롭고 중요한 조망을 개척하고 있다.

 

단어 윤리는 물론 다양한 것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윤리의 의미가 우리가 해야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규정한 일단의 규칙들이라면그럴 경우 구성주의는 다른 모든 합리적 철학 체계들과 마찬가지로 부적절한 것이 된다하지만윤리를 우리 행동 규칙들의 기초가 되는 가치들의 토대를 뜻하는 것으로 취할 경우상호주관적 현실에 대한 추구로 우리는 여타 사유 방식들과는 다른 기초를 얻는다.

 

이제까지 철학은 항상, '타자들의 운명을 고려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필수적이다'는 가정을 당연시하며 시작해야 했지만이러한 가정을 결코 합리적으로 정당화하지는 못했다그렇지만구성주의 관점에서나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왜냐하면그들이 있어야만 혼자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내 경험 세계에 더 확고한 기초를 세울 수 있도록 해주는 상호주관성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는 그 자체만으로는 윤리와 아무 관계가 없으며내 현실에서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도록 하는 전적으로 인식론적 논의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몇몇 중요한 원리들이 도출될 수 있다한편으로칸트의 "정언 명법이 있다이에 따라타자들은 끝까지 수단이 아닌 자율적 존재로 간주되어야 한다다른 한편으로타자들이 내 견해나 방법들에 동의하도록 밀어부쳐질 경우내 현실은 더 이상 결코 안정적일 수 없게 된다는 깨달음을 끌어낸다동의가 자발적이지 않다면,그것은 내 세계관을 확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오직 타자들이 내가 하려 한 바를 하는 것을 볼 때에야그들한테서 내 자신의 원리들의 확증을 볼 수 있다이로부터명백히동의는 강제되거나 구매될 수 없는 것이라는하지만 납득(納得)에 의해서만 자라나야만 한다는 관용(寬容)과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이제서야 마침내 함께 살기라는 주제에 이르렀다그래서구성주의가 적절함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랑의 실제적이며 합리적인 측면에 이르렀다.

 

제목에서 분명히 했듯이그 시작에는 둘이 필요하다물론바다나 산또는 콜리플라워나 쵸콜렛 또한 사랑할 수 있다하지만우리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이러한 측면에서나한테 중요한 것은,만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할 수 있는 한 자주 자신한테 말하는 것이다이로써 내가 뜻하려 하는 것은우리가 그들을 존재로서 창조하고 그들한테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가 아니라단지우리가 그들을 경험하는 방식은 우리한테서 나온 것이지 그들한테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다그리고 우리가 그들한테 귀속시킨 특징감정그리고 의도들은 단지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습관적 추상들에 종종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세계관을 적어도 몇몇 측면에서나마 확증하려면 다른 사람이 필요하기에그게 자발적이지 않을 경우 그런 확증은 쓸모가 없기에동반자한테 자율생각의 자유행위의 자유를 부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또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그 또는 그녀>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인정하자마자 분명해지는 것으로이는 함께 사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그녀가 원하는 것과 그가 원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같아야 할 것이다실제이것은 도달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그렇지만가끔씩은 아주 잘 통하는 경우도 있다자기 자신을 끼워넣어 다루는 일은이를테면새 차를 처음 몇 백 킬로를 길들이는 때와 꼭 같다거칠고 날선 데를 서로서로 갈아가는 까닭은말하자면합리주의자한테는 전혀 납득될 수 없는 정서적 이유들로다른 이가 무엇을 하든그 또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적어도 자신한테는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항이다.) 이윽고가끔씩 기질들이 너무 맞지 않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방식으로 행하는 다른 한쪽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경우처음에는 기꺼이 했던 양보로 이룬 타협이 갑자기 희생으로 돌변하기에엄청난 곤경에 처하게 된다.타자를 위해 이전에는 기꺼이 했던 일들이 이제는 강제된 노동으로 여겨지게 된다관계를 지속시켜야 할 경우보존 유지되어야 하는 '임계(臨界균형'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마치 '한쪽의 바람이 언제나 두 사람 모두의 바람이 되도록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자율적인 두 개인들을 다루는 경우실리에 입각해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그래서 함께 사는 예술은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무엇보다 먼저깨달아야 하는 문제는당신이 타자를가장 깊이 사랑함에도 불구하고혼자 하게끔 내버려 둘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사랑은 분명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둘 모두한테 서로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일이 항상 있음을 볼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치료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걸 관찰할 많은 기회를 가졌던 한 명의 주변인으로서나는 사랑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널리 퍼진 착각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사랑은 밖에서 다가온 마법처럼 생겨나 사랑을 낳고 영원히 그 사랑을 유지시킨다는 걸 믿도록 아이들을 키우는 한그런 경우 그런 사랑은 기능할 수 없다오비디우스가 오래 전 지적했던 바사랑은 예술이다사랑은 계속 창조되어야 하며끈기 있는 거리두기(警戒), 보살핌사려깊음을 요구한다.

 

이것은 구성주의 관점에서는 매우 분명하다동반자란 언제나 그 또는 그녀에 대해 우리가 경험하는 어떤 바다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그 또는 그녀를 추상했고그러므로 그 또는 그녀는 우리 구성물이지우리와 독립해서 존재하는이를테면-자체는 아니다우리가 구성했고우리가 지난 일에 신뢰를 주는그리고 우리한테 기대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은바로 이러한 사람인물이다이들 기대들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우리는 실망하며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경향이 있다그녀 또는 그가 행하고 말하는 방식은 언제나 다양하게 다른 방식들로 해석될 수 있기에동반자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우리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 망각된다.

 

그토록 자주 조화(調和)를 깨뜨리는 것은어떤 해석이 유일하게 맞는 것인 양 그 해석을 강요하는 것이다구성론자한테정확한 것들은 오로지 인간이 발명한 수학이나 여타 게임들에서만 존재한다단 하나의 해법만이 있다고 말하는 이의 삶에는 여하한 문제도 있을 수 없다단 하나의 해법만을 볼 수 있는 그러한 경우들에서조차다른 해법들도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 낫다가장 중요한 것은 작동하는 해법을 찾는 것이고그것은 가끔씩만문제 상황이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음이 발견될 때만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이유로당신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인간과 함께 살 때 그 또는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무수한 방식들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그래서,이성(理性)은 더 나은 생존 기회를 확보하는 사랑의 분위기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주(註) 

영어로 출판되기는 최초로, 
린츠에서 1989년 오스트리아 협회 제 3차 심포지엄에서 행해진 
대담의 개정판이다. 

참조 

Heisenberg, W. (1955) Das Naturbild der heutigen Physik. Rowohlt: Hamburg. 
English translation: Heisenberg, W. (1958) The physicist’s conception of 
nature . Harcourt Brace: New York. 


Einstein, A. (1954) Physics and reality. Bonanza Books: New York. 


Piaget, J. (1937) La construction du réel chez l’enfant. Delachaux et Niestlé: Neuchâtel. 
English translation: Piaget, J. (1954) The construction of reality in the child. Ballantine: 
New York. 


Kant, I. (1781) Kritik der reinen Vernunft (First edition). Available at: http:// 
www.gutenberg.org/etext/6342. English translation: The Critique of Pure Reason 
(translated by N. Kemp-Smith). Available at: http://humanum.arts.cuhk.edu.hk/ 
Philosophy/Kant/cpr 

Received: 22 October 2006 
Accepted: 10 November 2006 


저자에 관해 

에른스트 폰 글라저스펠트는 1917년 뮌헨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인 부모 밑에서, 북 이탈리아와 스위스에서 자랐다. 
쮜리히와 비엔나에서 수학을 간략하게 공부했고, 
2차 대전 중에는 아일랜드에서 농부로 살아남았다. 
1946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1961년까지 케카토의 스쿠올라 오퍼러티바 이탈리아나에서 
(언어분석과 기계번역을) 함께 연구했다. 
1962년부터 미국이 지원하는 컴퓨터 언어학 연구 프로젝트 감독관이었고, 
1970년부터는 미국 조지아 대학에서 인지 심리학을 가르쳤고, 
1987년부터 명예 교수가 되었다. 
2006년 현재 매사츄세츠 대학, 과학적 추리 연구소의 공동연구원 
1997년 클라겐푸르트 대학 명예철학박사. 

1960년 이래 260개 이상 논문 발표, 
책들로, 
Wissen, Sprache und Wirklichkeit 1987. Linguaggio 
e comunicazione nel costruttivismo 
radicale, 1989. 급진적 구성주의: 알기와 
배우기의 한 방식, 1995 (translated 
to German Portuguese, 한국어, and 
Italian) Grenzen des Begreifens, 1996. Wege 
des Wissens, 1997. Wie wir uns erfinden 
(with Heinz von Foerster), 1999 (Italian 
translation 2001). – Homepage: 
http://www.vonglasersfeld.com 

2010년 11월 12일, 
1970년대 RC로 알려진 인식론을 정식화한 인물이 영면에 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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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2011, 2, 16 , 수정 2013, 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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