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cal Constructivism: 알기와 배우기의 한 방식(1995)에 대한 NHK의 주석 게시판

정의


RC란 무엇인가? 이것은 지식과 알기 문제에 대한 비인습적(非因襲的) 접근이다. 출발 가정은, <지식이란, 어떻게 정의되든, 개인들 머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생각하기 주체가 아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방식 말고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며 살고 있는 세계뿐이다.* 이 세계는 사물, 자아, 타자, 등등, 수많은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경험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내 경험, 당신 경험이 다르지 않으리라 믿을 이유들을 내가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 경험이 같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언어에 대한 경험과 해석 또한 예외일 수 없다. ("Radical Constructivism: A Way Of Knowing and Learning: 1p" by EvG)


해설


앎, 알게 된 것, 즉, 지식은 '알기'라는 지식 습득 과정 또는 시스템의 작동 결과다. 지식 습득 과정에 대한 인습적 접근이란 지식이 외부 세계, 또는 다른 개체에서 한 개체로 전송 가능하다는 태도, 혹은 입장이다. RC는 이러한 인습적 태도가,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점에서, 방어 불가능한 입장임을 분명히 한다.


RC의 출발 가정, 즉 최초 공준은 "신경계는 조직적으로 닫혀 있다"는 점이다. 통상, 물리학에서, 에너지와 물질의 유출입을 기준으로 고립계, 닫힌계, 열린계로 시스템을 분류한다. 신경계는 데이터 또는 정보의 유출입에 있어서는 열려 있으나 자체의 조직적 과정 또는 의미에 있어서는 닫혀 있다. 신경 자극의 강도와 그 신호들의 배열을 데이터 또는 정보로 정의할 때, 그 정보들이 의미를 지닐려면 그 정보들이  일정한 조직화 과정 또는 그 결과로서 얻어진 코드 체계에 맞게 해석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신경계에 인입되는, 정의한 바대로, 데이터 또는 정보는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인입된 신호의 강도를 구별하고 그것들을 선후로 배열하는 것에서부터 구성은 시작된다. 이는 흄이 도달한 입장이었다.


이상의 공준을, 일상어로 표현한 것이, "지식이란, 어떻게 정의되든, 개인들 머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생각하기 주체가 아는 것은 그 또는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다". 지식이 개인들 머리 속에 있는 것이란 언급은, 오늘날 신경생리학의 성취들을 우리 사는 세계의 사실들로서 받아들여 이론의 기초로 삼는 점에서 당연한 출발이다; 물론, 신경계가 머리로 한정되지 않지만, 지식을 단순한 기억, 느낌들이 아닌 생각하기 주체가 작동하는 체계 또는 그 결과들이라는 점에서 신경계가 집적된 '머리 속'이란 표현은 방어가능하다. 이어, '조직적으로 닫혀 있는 신경계(마음)'에서 생각하기 주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입된 정보를 의미로 전환시키는 '지각-의도-행위 스킴'의 코드 체계를 조직, 발달시키는 길 말고는 뭔가를 아는, 혹은 의미를 창조하는 다른 길은 없다.


이상의 가정 아래, 생각하기 주체 또는 경험 주체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세계, 또는 현실, 혹은 실재라 여기는 것들을 창조한다. 여기서, 조성된 세계은 '우리'가 경험으로 만든 것이란 점이다. 그 '우리'는 바로 자아와 타자들이 사물들과 관계하면서 형성된 개념이다. 하지만, 언어에 대한 경험과 해석을 포함해서, 모든 경험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나'로서는 나의 경험이 '너'의 경험과 같다 다르다 하는 걸 판단, 비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말인즉, 나의 '우리'와 너의 '우리'가 같은 지 어쩐 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내 생각하는 '너'와 너의 '우리'가 정말 그것인지 어쩐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개체의 입장에서, 경험 너머 외부란 '있다' 또는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즉,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RC의 최초 공준에 따른 인식론적 귀결이다.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일 경우, 실재론이라 하고,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유아론이 된다: 구성된 총체를 마음이라 하면 유심론이 된다. 그리고 그 '있다'를 유일신의 주재하는 바로 여기거나 과학으로 접근 이해 가능한 바로 여기는 것은 결국 인식론적 가정에서는 동형이다.


따라서, RC에서, 지식이란, 순환적이지만 동어반복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실재 혹은 실재성을 준거로 사용하지 않고, 그 대신, 체계의 작동성, 체계들의 상호일관성, 양립성을 준거로 사용한다. 이것이 최초 공준의 방법론적 귀결이다.


또한, 신경계의 조직화, 즉 구성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인지란 상호의존적 위계 네트워크 형식으로 장착 실행되는 것이기에, 그 구성요소들 사이 상호간 의존성들(말인즉, 制約들)이 "Anything goes(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구성들은 그밖에 그리고 특히 더 오래된 구성들과 연결 정도에 따라 변화하는 상이한 수준들이 있다."(The Key to RC by Alexander Riegler) 이상의 구성의 한계는 신경계 자체의 내적 구조적 한계다.


마지막으로, 모든 구성물들, 특히 타자들의 구성에 있어, 구성의 한계는 이상의 내적 구조적 한계 이상의 한계를 갖는다. 그것은 "Anything goes if it work"에서 작동 조건은 내적 구조적 한계 혹은 제약을 피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경험 너머 외부 세계의 알 수 없는 제약을 피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적 구조적 한계를 피해, 즉, 잘 만들어져 작동하던 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그것의 이유를 알 수가 없을 때, 그 귀결로서, 즉, 따름 정리로서, 우리는 그것이 그 무엇과 충돌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해서, 우리는 앞서 RC의 인식론적 귀결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경험 너머 실재에 대해 추가적 귀결을 얻는다. 경험 너머의 실재에 대해 특정 시공간을 갖는 존재를 가리키는 '있음'으로 혹은 그 반대의 '없음'으로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가 실패와 충돌들을 경험했을 때만 간접적으로 그 '바'를 우리가 느껴 경험할 수 있는 '바'로만 승인되는 것이다. 이렇게 승인된 경험 너머 실재는 '경험적 실재'로 칭해지는 우리가 구성한 세계에서 언제나 시적 지식, 즉, 지혜로써만 가늠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RC가 오래된 지혜로 여겨지는 사상들이 공통적으로 노린 목적들, "공경', '경외',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인내천' 등등에 부합하는 지점이다. 


*"우리가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며 살고 있는 세계뿐이다."는 이전에 "유일무이한 세계다"를 수정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경험으로 구성하는 것은 경험 너머 실재로, 그것을 재현 또는 표상하고 있다고 주장되는 존재론적 실재도 아닌 오직 우리가 함께 만들고 있는 경험적 실재, 즉, 우리의 실재하는 현실뿐이다>라는 의미다.     


**정의에 기술된 RC의 전제들은, 당대에 진짜 또는 사실로 여겨져 당연시 되고 있는 것들이다. 수긍하기 힘든 이라면, 아직 소박 실재론적 관점에 머물러 있는 경우일 수 있으며, 비판적 실재론자의 경우에도, 자신의 구성물이 객관성이나 실재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단 그 구성에서는 그/그녀의 경험적이자 주관적인 관념들의 구성물이다. 정의에 표현된 용어, ‘생각하기 주체, 우리, 는 명확히 구별되어야 되며, 그 까닭은 이후 장과 절들에서 수없이 볼 수 있다.


--> 과학적 지식과 시적 지식의 통약 불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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